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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온도 -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사람마다 타고난 사랑의 온도는 전부 제각각일 것입니다.
하물며, 한 사람의 사랑의 온도도 누구와, 언제, 어떤 상황에서 겪느냐에 따라 늘 변할 것입니다.
90년대 중반이라는, 아날로그에도 디지털에도 확실히 속하지 못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운명처럼 엇갈리는 사랑을 나누는 이 작품 속 인물들의 사랑의 온도의 편차는 무척 큽니다.
누군가는 소극적이고 신중한 반면, 누군가는 적극적이고 정열적입니다.
아무리 상대가 바뀌어도 타고난 온도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만 오르락내리락 하는 법이지만,
자신이 먼저 시작한 사랑의 온도와 남이 먼저 걸어온 사랑의 온도는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 작품은 몇 년에 걸쳐 불안하게 오르내렸던 네 명의 사랑의 온도의 변화를 담담히 그립니다.
사랑 자체에 꽤나 회의적이었지만 어느 날 불쑥 찾아든 미묘한 감정에 휘말린 이후
몇 년에 걸친 지독한 기다림 또는 체념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그녀, 현수.
현수와는 180도 다른, 붙임성 있고, 활달하고, 항상 주위에 따르는 남자가 가득했던,
그래서 ‘지극히 안정적인 현실’과 결혼한 뒤에도 위험한 사랑을 꿈꾸는 그녀, 홍아.
지극히 이성적인 면과 감성적인 면을 동시에 지닌 듯한,
그래서 순수하고 착한 사랑만 할뿐, 누구에게도 상처 줄 것 같지 않은 바보 같은 남자, 정선.
소위 스펙으로 치면 남부러울 것 없으면서도 그답지 않은 섬세한 사랑을 추구하는,
그래서 늘 현수 주위를 조용히 공전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남자, 정우.
이야기는 여느 멜로 스토리와 크게 다르지 않고, 파격적인 설정이나 사건도 없습니다.
대신 작가는 엇갈린 사랑의 방향과 깊이, 서로 다른 눈금을 가리키는 사랑의 온도 때문에
아주 잠시의 행복밖에 허락받지 못한 안쓰럽고 애틋한 주인공들에게 애정을 쏟습니다.
덕분에, 극적인 재미나 예상치 못한 결과를 기대한 독자들에겐 좀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90년대라는 모호한 경계의 시대에 아날로그 냄새가 감도는 잔잔한 멜로를 기대한다면
한나절 정도의 시간만으로도 의외의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애초 멀티로 기획된 것 같긴 하지만)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방송 중입니다.
원작 속 인물들의 캐릭터와 사랑의 온도가 드라마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출판사 ‘북로드’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