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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보수 ㅣ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경찰소설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87분서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이자,
오리지널 주인공 스티브 카렐라의 자리를 위협하는(?) 코튼 호스 형사의 두 번째 출연작입니다.
(다 읽은 건 아니지만) 보통 두 개의 사건이 병행되던 전작들과 달리
‘살인자의 보수’는 사냥총에 얼굴이 날아간 갈취범 살인사건 하나에만 매진하고 있습니다.
피살자는 비록 타인의 약점을 노려 사익을 취한 비열한 갈취범이지만
어쨌든 87분서의 형사들은 살인범을 잡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습니다.
하지만 갈취범의 피해자 중 한 명이 범인일 거라는 심증만 있을 뿐,
정작 경찰이 찾아낸 피해자들은 살인사건과는 무관한 자들이었습니다.
전작인 ‘살인자의 선택’에서 망신살 뻗치는 데뷔를 했던 코튼 호스 형사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갈취범 살인사건에 전력을 다 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실수하는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이기 싫어 단독수사를 감행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코튼 호스는 예상치 못한 성과를 올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치명적인 위기 상황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대략 정리한 줄거리지만, 이 시리즈를 한 편 이상 읽은 독자라면
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스티브 카렐라의 이름이 한 번도 안 나오나, 궁금할 것입니다.
전작인 ‘살인자의 선택’ 후반에 실린 ‘저자의 말’을 읽은 독자라면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익히 짐작할 수 있겠지만,
궁금히 여기는 독자들을 위해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작가 에드 맥베인은 집필 당시 편집자로부터
‘연애 한 번 맘대로 할 수 없는 성실한 유부남’ 스티브 카렐라 대신
‘맘껏 연애도 할 수 있고 거칠기 짝이 없는 마초 같은 매력적인 형사’를 강요받았고
그 결과 코튼 호스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번듯한 외모, 점잖은 이력과 달리 데뷔작에서 큰 실수를 하며 허당 캐릭터를 부여받았던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로부터 제대로 주인공의 포스를 선물 받게 되는데,
다른 동료들의 도움을 받긴 했어도 거의 단독으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을 맡은 덕분에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던 스티브 카렐라를 거의 조연으로 위축시키고 만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1957년에는 편집자의 입김이 그만큼 셌다는 뜻이겠죠.
아무튼...
스티브 카렐라 뿐 아니라 마이어 마이어, 버트 클링, 아서 브라운 등
전통적인 87분서의 캐릭터들이 전작에 비해 분량이나 비중 모두 왜소해진 반면,
코튼 호스는 정열의 마초와 유능한 형사로서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습니다.
피살자의 여친, 실종자의 애인, 식당에서 만난 웨이트리스 등
유부녀만 아니라면 언제 어디서든 ‘짧고 강렬한’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전작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예리하고 정확한 추리로 끝내주는 성과를 올리기도 합니다.
고백하자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상반된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분명 코튼 호스는 매력적인 캐릭터이고, 이야기도 MSG를 친 것처럼 재미있어진 건 사실인데
왠지 ‘87분서 시리즈’만의 독특한 향기 – 그건 스티브 카렐라의 향기일지도 모릅니다 – 가
적잖이 사라졌다는 느낌도 동시에 받았다는 뜻입니다.
욕심 같아선 두 가지 미덕이 모두 살았다면 어땠을까, 라는 바람이지만
‘두 명의 영웅’을 다 살리려다 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
갑자기 궁금함이 밀려와, 전에 읽은 ‘킹의 몸값’, ‘아이스’ 등 이후 시리즈의 서평을 찾아보니
어디에도 코튼 호스의 이름은 보이지 않더군요.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마이어 마이어나 버트 클링의 이름이 서평에 나오는 걸 보면
코튼 호스의 비중이 축소됐거나, 시리즈 어디쯤에선가 하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후반에 실린 ‘저자의 말’을 보면 대략 코튼 호스의 미래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그건 꼭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동어반복이지만, ‘살인자의 보수’는 재미 면에서는 어떤 전작들보다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물론 1957년에 창조된,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아날로그 서사의 아쉬움은 여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의지하지 않고, 뛰고 달리며 끊임없이 생각하는
87분서의 형사들이 훨씬 더 안쓰럽고 기특해 보이고 애정이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뒤의 순서를 보면 ‘Lady Killer’-‘살의의 쐐기’-‘'Til Death’-‘킹의 몸값’인데,
아직 안 읽은 ‘살의의 쐐기’를 먼저 읽어야 할지,
아니면 ‘Lady Killer’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순서대로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물론 순서대로 출간될지 여부는 피니스아프리카에 맘대로겠지만요.^^
올해에만 ‘87분서 시리즈’가 두 권씩 출간돼서 흐뭇했는데,
연말쯤 세 번째 출간소식을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만
너무 늦지 않게 ‘Lady Killer’가 나와주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