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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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에 한 번 개최되며 젊고 우수한 인재들을 다수 배출해내

클래식 음악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

한때 천재 소녀로 불렸지만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무대를 떠났던 에이덴 아야.

유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줄리아드 음악원 출신의 엘리트 마사루 카를로스.

음악을 전공했지만 악기점에서 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28세 가장 다카시마 아카시.

그리고 양봉가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며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해온 소년 가자마 진.

수많은 참가자들 사이에서 이들 네 사람이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자신과의 싸움.

3차에 걸친 예선을 뚫고 본선에서 우승을 거머쥘 사람은 누구인가?

진정 음악의 신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 흠뻑 빠진 적이 있습니다.

클래식을 소재로 한 청춘들의 성장 드라마인데,

문외한들조차 그 드라마에 등장한 클래식을 찾아 듣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역시 꽤 오래 전의 일이지만, ‘나는 가수다초반 시즌에 흠뻑 빠진 적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가수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무대 자체도 좋았지만,

탈락자를 골라내기 위한 살 떨리는 경연을 지켜보는 일은

긴장과 재미는 물론 심지어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갖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노다메 칸타빌레나는 가수다모두 재미와 감동 외에 특이한 경험을 선사하기도 했는데,

그건 바로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갑자기 두 눈에서 툭 터져나오는 눈물이었습니다.

노다메와 그녀의 동료들이 일궈내는 클래식의 향연을 지켜보며 눈시울이 뜨끈해지기도 했고,

나는 가수다에서 간혹 카메라에 잡힌 관객이 흘리는 조용한 눈물을 보며

제 눈에서 툭 터져나온 눈물이 낯 뜨겁고 별난 일은 아니구나라는 위안을 받기도 했습니다.

꿀벌과 천둥은 바로 그런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재는 클래식이고, 배경은 젊은 천재들의 콩쿠르 무대지만,

음악이 갖는 고유하고 보편적인 속성이 잘 녹아있어서 누구나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작품입니다.

 

외피만 보면 무척 통속적인 설정입니다.

세 명의 천재와 한 명의 범인(凡人)이 주인공이며,

그들은 보름 넘는 콩쿠르를 통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경쟁을 펼칩니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대결-갈등-애증-성장의 구도를 갖고 있고,

캐릭터들은 만화 속에 등장할 법한 매력적인 천재들로 구성돼있습니다.

예측불허의 해석과 연주로 모두를 놀라게 만드는 순수하고 이질적인 천재 가자마 진,

뛰어난 외모까지 겸비한 천재지만 튀기는커녕 오히려 평범해 보여서 매력적인 마사루,

천재성에 있어 진과 마사루의 중간쯤에 서있으며 내면에 큰 상처를 갖고 있는 에이덴 아야,

그리고 후천적 노력파에 해당하는 28세의 최고령(?) 아마추어 아카시가 그들인데,

이야기의 구도나 캐릭터만 보면 온다 리쿠 작품 맞아?” 소리가 절로 날만큼 대중적입니다.

하지만 오직 들릴 뿐인 음악의 세계를 눈에 보이는 색채와 이미지로 묘사한 문장을 읽다보면

역시 온다 리쿠!”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2악장 아다지오.

차분하고 장엄한 오케스트라 도입부.

숲속을 천천히 거니는 사슴이 보이는 듯하다.

희미한 안개가 피어오르고, 쌀쌀하지만 어딘가 신비한 공기가 팽팽하게 차오르는 아침.

밤은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아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이 주위에 감돈다.

어느덧 (객석에 앉은) 아야도 그 차가운 아침 안개 속을 거닐고 있었다.” (672p)

 

다만, 독자에 따라 색채와 이미지 묘사가 지루하거나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700페이지에 가까운 엄청난 분량 가운데 이런 묘사가 꽤 자주, 많이 등장하기 때문인데,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대목이라는 생각입니다.

(저 역시 그런 면에서 살짝 아쉬움이 있어서 별 반 개를 뺐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책을 읽었다기보다 한 편의 거대한 교향곡을 들은 듯한,

, 보름 넘도록 진행된 콩쿠르를 객석에 앉아 직접 본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는 그녀의 몽위를 읽은 뒤 마치 긴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나

달의 뒷면을 읽은 뒤 판타지 속 도시로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다만, 그 작품들이 스토리나 캐릭터 모두 몽환적인 분위기에 사로잡힌 경우라면,

꿀벌과 천둥은 오히려 온다 리쿠답지 않게 지극히 사실적인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도

음악이라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세계를 그녀 특유의 서사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노다메 칸타빌레나는 가수다를 보고 그랬듯이,

아마 저는 조만간 꿀벌과 천둥에 등장한 클래식들을 찾아 듣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음악들을 모두 들은 뒤에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읽는다면

저마다 절절한 사연들을 갖고 있는 주인공들의 과거와 현재,

, 그들이 콩쿠르를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에 좀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고,

색채와 이미지로 묘사된 음악에 관한 문장들도 새롭게 읽힐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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