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테이프 스토리콜렉터 57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늦은 밤에 미쓰다 신조의 책은 번역하지 않기로 하고 있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호러물을 많이 번역하신 현정수 님이 후기에 이런 글을 남기셨습니다.

공교롭게도 저 역시 미쓰다 신조의 책은 웬만해선 밤에 읽지 않기로 한 터라,

요 며칠, 출퇴근길에는 괴담의 테이프, 밤에는 제프리 디버의 ‘XO’를 병행해서 읽었는데,

아마도 미쓰다 신조의 노조키메작자미상을 읽은 독자라면

저나 현정수 님의 이 괜한 엄살이 아니라는 점은 이해하실 겁니다.

 

노조키메후기에 실린 현정수 님의 설명에 따르면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을 단서를 찾아 논리적으로 풀어내야 하는 것이 미스터리이고,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둬야 하는 것이 호러인데,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가 전자의 대표적 작품이라면

괴담의 테이프99% 후자에 속하는 작품합니다.

 

● ● ●

 

소설가 미쓰다는 알고 지내던 여성편집자에게 괴담의 테이프출간을 제안받습니다.

자살을 앞둔 자의 마지막 녹취록 내용을 소재로 한 죽은 자의 테이프 녹취록을 시작으로

그동안 발표한 단편 호러작품들을 묶어 소설집으로 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편집자는 최근 자신이 겪은 기이한 경험들을 중간에 삽입할 것을 요청합니다.

사실 그 편집자는 과거 미쓰다가 갖고 있던 꽤 많은 괴담 녹취테이프에서 괜찮은 소재를 모아

연작단편을 출간할 것을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들은 다 상이하지만 괴담 테이프를 기반으로 한 공통점을 컨셉으로 잡자는 얘깁니다.

미쓰다는 큰 기대 없이 그 테이프를 건네줬는데,

문제는 테이프를 들은 편집자가 어느 날인가부터 이상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새로 출간된 괴담의 테이프에는 미쓰다의 단편 6작품과

편집자의 경험담이 서장, 막간, 종장의 형식으로 함께 실립니다.

 

● ● ●

 

도키토 씨에게 어째서 일련의 괴이현상이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괴이가 발생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상태로는 독자가 불만스럽게 느낀다든가...”

이 책이 미스터리 소설이었다면 절대 불가였겠지요. 하지만 호러니까 딱히 문제는 없습니다.”

 

미쓰다와 편집자가 작품 속에서 나눈 대화인데, 이 작품의 특징을 함축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말 그대로 영문을 알 수 없다면 그대로 내버려둬야 하는 호러라는 뜻이죠.

물론 미쓰다는 종장에서 나름대로 수록작들을 관통하는 코드를 해석해주긴 하지만,

그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죠.

심지어 본인마저 편집자 못잖은 괴이한 경험을 한 미쓰다는 이런 언급까지 합니다.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과연 나 자신의 의사였을까?”

 

어쩌면 괴담 녹취 테이프에 들러붙은 그것의 힘에 의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쓴 글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미쓰다 신조는 작품마다 이런 애교 섞인 협박을 독자에게 툭툭 던지곤 하는데,

이 협박이 밤만 되면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의 작품은 어지간해선 밤에는 안 읽겠다고 결심한 거구요.^^

 

개인적으로는 노조키메’, ‘작자미상’, ‘백사당’, ‘사관장등에 비해선 강도가 좀 약했지만,

단편으로서의 매력은 꽤 괜찮았던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이유도 묻지 말고, 논리적으로 따지지도 말고 호러 자체를 즐기면 되는 작품입니다.

 

사족으로..

미쓰다 신조는 작품 속에서 자신의 차기작을 언급하곤 하는데,

괴담의 테이프에서는 애초 도조 겐야 시리즈로 기획됐다가 스탠드얼론으로 급선회한

검은 얼굴의 여우라는 작품을 여러 차례 언급합니다.

물론, 2015년에 출간된 괴담의 집에서도 자주 언급된 유녀(幽女)처럼 원망하는 것

아직까지 국내에 출간되지 않아서 무척 아쉽지만,

유녀처럼~’이든 검은 얼굴의 여우든 하루 빨리 미쓰다 신조의 신작이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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