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스 버티고 시리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버크 데보레는 23년간 제지회사에서 일해온 평범한 중산층 남자다.

하지만 미국에 불어닥친 인원 감축의 바람을 피하지 못한 그는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되고 만다.

재취업을 위해 원서를 내보지만 2년이 지나도록 그를 다시 받아주는 회사는 없다.

초조해진 그는 자신의 인생과 상처 입은 영혼을 복구하기 위해 기막힌 계획을 세운다.

그는 잡지에 제지회사의 가짜 구인 광고를 낸다.

사서함에는 경쟁자들의 이력서가 쌓이고, 그는 자신보다 더 능력 있어 보이는 6명을 추린다.

뛰어난 인사 담당자라면, 버크 데보레보다는 이들을 채용할 것이다.

버크 데보레에게 필요한 것은 이 유능한 경쟁자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설정이나 소재도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었지만 그보다 더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박찬욱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싶은 원작소설로 꼽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딱 박찬욱 감독 스타일, 기발하고 파격적인 이야기입니다.

 

언뜻 제목만 보면 도끼(Ax) 연쇄살인마를 다룬 작품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실제 이 제목은 직장에서 해고된 걸 비유하는 영어 표현인 도끼질 당했다에서 유래합니다.

해고의 광풍이 낳은 끔직한 참극을 그렸다는 점에서 적절한 제목으로 보이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땐 도끼 연쇄살인마스토리를 읽은 듯한 느낌도 강하게 들어서 그런지

꽤나 이중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제목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액스는 제목만큼이나 다양한 면모를 가진 작품입니다.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고발극이면서, 연쇄살인을 다룬 스릴러이기도 하지만

일면, 진짜 지독한 블랙코미디의 인상도 갖고 있습니다.

 

작가는 수시로 정리해고의 비정함과 부당함, 시스템의 문제를 정면으로 언급하면서

동시에, 그 광풍에 치인 한 개인이 어떻게 철저하게 붕괴되는지 디테일하게 묘사합니다.

공장자동화가 몰고 온 육체노동자의 몰락에 이어

컴퓨터의 등장 이후 거리로 내몰린 버크 같은 중간관리자들의 비극을 읽다 보면

수많은 버크 데보레를 거리로 쏟아낼, 로봇이 장악할 머지않은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발이 지루하게 읽히지 않는 이유는

주인공 버크가 벌이는 기상천외한 프로젝트,

경쟁자 제거하기라는 다분히 엽기적이고 오락성이 강한 연쇄살인 스토리 때문입니다.

매번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살인극이 벌어지고,

완전범죄라고 안심할 무렵 뜻하지 않은 단서를 잡은 경찰이 등장하는가 하면,

해고의 후유증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 버크 가족들의 문제까지 뒤엉키면서

이야기는 숨 돌릴 틈 없이 급박하게 전개됩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눈앞에서 끔찍한 살인극이 묘사되고 있는데도

독자가 긴장감을 갖기는커녕 피식피식 웃음을 짓게 된다는 점입니다.

상황이 웃겨서가 아니라, 블랙코미디 같은 쓴웃음이라고 할까요?

평범한 중산층 남자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면서 킬러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쓴웃음과 동정심, 심지어 부디 잡히지 말고 미션을 완수하기를 바라는마음까지 생깁니다.

특히 버크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갖다 붙이는 이런저런 명분들이

억지라기보다 오히려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라 더욱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이 출간된 게 1997년이니 20년의 시간이 흐른 셈입니다.

그 사이 세상은 더욱 험악해졌고, 이제 일자리는 생존의 가장 큰 화두가 됐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자리를 위해 킬러가 된 버크는 소설 속 픽션이 아니라

현실 여기저기에서 목격할 수 있는 실존 인물처럼 소름 돋게 뇌리에 각인됩니다.

한 개의 일자리, 열 명의 지원자가 제 앞에 닥친 현실이라면

저 역시 버크 같은 상상력을 발휘하지 말란 법이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살면서 버크와 맞닥뜨릴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번역가 최필원 님의 말씀은

그래서 더욱 섬뜩하고 리얼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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