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이 식사할 시간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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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단편집입니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8년 전 첫 단편집이 있었고 다수의 장편도 출간됐다는데

사실 (부끄럽게도) 강지영이라는 소설가는 제 기억엔 없던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카페나 블로그에서 개들이 식사할 시간에 대한 글들이 자주 눈에 띄었고

고백하자면, “좋은 신인이 나왔나보다.”라는 기대감에 이 작품을 읽게 됐습니다.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9편 모두 무척 매력적인 작품들이었지만

순한(?) 독자 입장에선 좀(또는 아주 많이?) 불편하게 읽힐 작품들이 꽤 있습니다.

 

과거의 원죄를 망각한 대가로 참혹한 지경에 이르는 남자 (개들이 식사할 시간),

세 개의 눈을 가진 소녀의 비극 (눈물),

아내의 시체 곁에 누워 뒤늦은 애정을 표현하는 남편 (거짓말),

숙주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이어가는 여자 (스틸레토),

사향나무로 둘러싸인 저택에 사는 노파의 끔찍한 비밀 (사향나무 로맨스),

거대한 성기 때문에 맺어진 두 남녀의 애틋한 인연 (허탕)

대부분의 수록작들이 충격적인 소재와 엔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도 다르고, 깊이나 수위도 다르고, 작가의 성향도 분명 다르지만

읽는 내내 편혜영의 아오이 가든이나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남의 일’,

오츠이치의 ‘ZOO’ 등이 생각나곤 했습니다.

호러와 판타지, 때론 의도된 불쾌감이 끈적끈적 묻어나는 작품들이지만

각각 재미나 주제 면에서도 독자에게 강한 소구력을 발휘하는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문득 연상된 이유는 무척이나 막연하고 추상적이어서

?”냐고 묻는다면 딱 부러지게 한마디로 대답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그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개들이 식사할 시간역시 매력적으로 읽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호러나 판타지를 읽으면서 굳이 주제까지 따지고 드는 편은 아니지만,

각 작품의 의미를 확인하고 싶다면 문학평론가 박인성 님의 해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다른 평론가에 비해 꽤 쉬운 표현으로 찬찬히 설명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가의 해설이다 보니 현학적으로 읽히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다만, 박인성 님의 해설 중 100% 공감하는 대목이 있어서 짧게 인용해보면,

 

한국 단편소설은 (중략) 개인의 내면만을 과도하게 전경화하거나

특정한 사건 없는 세계를 그저 브리콜라주적인 방식으로 그려냄으로써

플롯으로부터 손쉽게 이탈해버리곤 한다.

이것은 마치 몰입 없는 이야기야말로 문학적 수법인 것처럼 착각하는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브리콜라주 : 손에 닿는 대로 아무것이나 이용하는 예술 기법)

 

최근 읽은 작품 중에 딱 이런 느낌을 받은 작품이 황정은의 단편집 아무도 아닌입니다.

(황정은의 다른 작품을 읽지 못해서 자칫 편견일 수도 있는 내용이니 양해 바랍니다)

다 읽고 수록작 별로 줄거리 정리까지 해놓고도 결국 서평을 못 쓴 작품인데,

반론할 독자가 엄청 많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슨 서평을 써야 할지 참 난감했습니다.

수록작 중 약간이라도 공감했던 작품은 누가복경정도였는데,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어쨌든 스토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 외에는 대부분 이게 끝이야?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의문만 남긴 채 막을 내렸습니다.

유수의 문학상 수상집에서도 이런 의문을 자주 접하곤 했는데,

솔직히 소설 독자 입장에서 개인의 내면을 과도하게 전경화하거나 특정한 사건 없는 세계

언제나 환영할 만한 소재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강지영의 개들이 식사할 시간은 스토리텔링에 충실하면서도

나름 이것저것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겨주는 작품집입니다.

(물론 수록작에 따라 재미에 그친 작품도 있습니다.)

작품집 자체에 대한 호불호는 물론 수록작 각각에 대해서도 의견들이 많이 갈리겠지만

저의 호감을 산 작품은 사향나무 로맨스’, ‘스틸레토’, ‘거짓말입니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 또 같은 독자라도 어떤 조건에서 책을 읽느냐에 따라

사건 없는 내면을 택할 수도, ‘명료한 스토리텔링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

고온다습한 날씨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요즘 같은 때라면

강지영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서늘한 느낌을 만끽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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