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완벽한 남편, 완벽한 결혼, 그리고 완벽한 거짓말.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내 남편은 공포의 냄새를 즐기는 사이코패스였다.”

 

별도의 줄거리 정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이야기 전체를 한눈에 짐작하게 하는 카피입니다.

노골적으로 음습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제목까지 감안하면

호기심보다는 불편함이 먼저 느껴져서 얼른 손에 집어들기가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호평을 받았던 나를 찾아줘걸 온 더 트레인역시 재미는 있었지만

읽는 내내 마음 한쪽에 돌덩어리를 얹어놓은 것처럼 거북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 ● ●

 

영화배우 같은 외모에 승률 100%를 자랑하는 유명한 가정폭력 전문 변호사 잭 앤젤은

가는 곳마다 여자들의 눈길을 끄는 완벽한 남자입니다.

그런 그가 지극히 평범한 여자 그레이스에게 호의를 베풀며 다가옵니다.

다운증후군에 걸린 여동생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잭에게 반한 그레이스는

그의 구애와 청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레이스의 행복은 결혼식을 마친 그날 밤부터 악몽으로 변합니다.

대외적으로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완벽한 부부로 보이지만,

그레이스는 감금된 채 사육 당하는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상대가 느끼는 공포와 상대가 내지르는 비명소리에서 희열을 느끼는 잭은

그레이스는 물론 그녀의 여동생까지 손아귀에 넣을 계획을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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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불편함재미가 함께 섞여있는 작품입니다.

상대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완벽한 통제력을 발휘하는 악마 같은 잭의 행동도,

그런 잭에게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며 지옥 같은 삶을 사는 그레이스의 처지도,

한편으론 불편함을, 한편으론 재미를 주는 대목입니다.

 

작가는 그레이스가 반격을 꿈꾸는 중후반에 이를 때까지

잭과 그레이스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참극을 거의 돌직구처럼 독자에게 던집니다.

자기 의지를 완벽하게 박탈당한 그레이스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은 물론

말 한마디, 표정 하나까지 잭의 뜻대로 따라야만 했고,

조금이라도 저항했다간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하방에 기약 없이 감금됩니다.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완벽한 젠틀맨이자 유능한 가정폭력 전문변호사로 인정받은 잭이

그레이스의 겁에 질린 비명과 가쁜 호흡에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로 변신하는 과정은

분노와 함께 소름까지 돋게 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묘사됩니다.

 

이렇듯, 워낙 세고 독한 이야기들이 중후반까지 이어지는 탓에

독자에 따라 불편함 이상의 거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잭에게는 큰 위기가 없고, 그레이스는 속절없이 당하기만 하니

이야기 전개에 눈에 띄는 큰 굴곡이 없어 보인 것도 아쉬웠습니다.

 

또한,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누군가가 타인을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물리적 폭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공포심만으로 희열을 느낀다는 게 가능할까?

왜 하필 잭은 그레이스를 택했을까? 왜 그레이스는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 않을까?, 라는

여러 가지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중간에 해답이 제시되는 의문도 있지만, 끝까지 의문부호가 남는 의문도 있습니다.

신에 가까운 잭의 통제력이라든가, 타인의 공포심에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 기질은

아무리 픽션이긴 해도 독자를 100% 공감시키기는 쉽지 않은 대목입니다.

 

하지만 빠른 전개와 간결한 문장, 현실감 있는 조연들 덕분에 페이지는 빨리 넘어갑니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그레이스가 반격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장면은

기대만큼 신선하거나 충격적이진 않지만 긴장감이 잘 살아있는 클라이맥스를 선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분량을 늘려서라도 클라이맥스에서 엔딩까지가 좀더 디테일하게 그려졌다면

스릴러로서의 완성도라든가 독자들의 카타르시스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또한, 일부 챕터라도 잭의 시점에서 그려진 내용이 있었다면

타인의 공포에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가 더 현실감 있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300페이지를 갓 넘기는 분량이 여러 모로 아쉽게 보였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사이코패스들이 날뛰는 시대를 살다 보니,

어쩌면 선한 이웃이라 생각한 자들 가운데 잭의 아류들이 여럿 섞여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타고난 사이코패스든, 학습된 사이코패스든 잭 같은 악마적 존재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멀쩡한 정신으로 세상을 산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소설이지만 영상이 저절로 떠오르는 부분이 많아서

어쩌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이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잭의 공포가 훨씬 더 생생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마침 판권도 팔렸다고 하니 한번 기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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