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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그림자 ㅣ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의 전작인 ‘사신의 술래잡기’(2016년)를 읽고 쓴 서평을 찾아보니 “독특한 설정과 기발한 캐릭터, 흥미로운 연작 구성”, “후속작을 안 볼 수 없게 만들었다.”는 호평이 눈에 띄었습니다. 나름 매력적인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서 후속작인 ‘사신의 그림자’가 나오자마자 찾아 읽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형님보다 많이 모자란 동생’이랄까요? 천재적인 콤비 모삼과 무즈선이 악의 응집체인 L과 벌이는 사투가 전편에 이어 계속되지만 그들 간의 정면 대결을 그린 마지막 수록작 ‘심연의 천사’ 외에는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동어반복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약혼녀를 L에게 잃고 본인 역시 치명적인 중상을 입었던 천재 프로파일러 모삼과 역시 천재적인 법의학자로 모삼과 함께 L의 체포에 모든 것을 건 무즈선. 전작에서 L은 두 사람에게 자신이 지정한 살인사건을 정해진 시간 안에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 3일 이내에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겠다며 황당한 게임을 지시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대미문의 토막살해범의 협박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은 L에 의해 새로운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사건해결에 전념합니다.
전작에서는 두 콤비의 긴박하고 피를 말리는 사건해결 과정이 꽤나 매력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언제 끝날지조차 모르는 게임은 계속 됐고, L의 문제는 점점 난이도가 높아졌습니다. 아마 그런 탓에 “후속작을 안 볼 수 없게 만들었다.”는 호평을 했겠지만, 후속작에서 그려진 게임은 전작보다 느슨하고 긴장감도 떨어졌으며, L의 존재감도 어딘가 희미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대됐던 모삼-무즈선과 L의 정면대결이 그려지지 않은 채 엇비슷한 내용이 반복돼서 2/3정도쯤에서는 중도포기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마지막 수록작에서 제법 큰 사이즈의 이야기를 통해 L과의 정면대결을 그리고 있지만, 어쩐지 허겁지겁 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흉내낸 듯한 상투적인 마무리 때문에 지금까지 읽어온 이야기들의 무게감까지 가볍게 만든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름 신선했던 작품의 후속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데, 불필요한 디테일로 모삼과 무즈선의 ‘천재적 지식’을 과시하려는 대목들이나, 별로 대단치 않거나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억지처럼 보인 프로파일링에 주변인들이 열광하는 모습은 전작보다 더 과장되고 심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프로파일러 캐릭터가 소개되기 시작한 초창기의 아마추어 식 접근법이랄까요? 여기에 덧붙여 앞서 언급한 ‘엇비슷한 사건’들 때문에 맥빠지는 후속작이 됐다는 생각입니다.
내용만큼 아쉬웠던 것은 전작보다 서투른 느낌을 준 번역과 곳곳에서 발견된 오타들입니다. 직역처럼 보이는 문장도 있었고, 형식에 맞지 않는 문장들도 간간히 보였습니다. 전작에서는 거의 못 느꼈던 오타로 인한 불편함은 좀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마지막 수록작의 엔딩을 보면 이후로 ‘사신 시리즈’가 더 나올 것 같진 않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형님보다 나은 동생’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작품이었습니다. 만일 모삼과 무즈선을 앞세운 새로운 시리즈가 나온다면 적어도 ‘사신의 그림자’보다는 성장한 서사로 채워지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