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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인간
요미사카 유지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번역가 김은모 님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emshadow/221012340340)에서 본
‘이 책이 국내출간 될 줄이야!!’라는 포스팅 덕분에 알게 된 작품입니다.
제목부터 제 취향과는 거리가 좀 먼 작품이지만,
“내용은 흥미진진하고 진상도 특이하지만, 그 특이함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데요.
독특한 본격 미스터리를 접하고 싶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라는 추천사를 보곤
갑자기 호기심이 급 발동하여 읽어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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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인간이라고 들어 봤어?”
이렇게 시작하는 본 작품은 일본의 한 지방에서 뿌리 깊게 회자되는
기괴한 도시 전설의 진상을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속되는 의문사.
경찰들도 포기한 이 기묘한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잡지사의 르포라이터는
특집 기사를 위해서 이 지역의 취재를 시작한다.
죽은 사람들의 가족, 학교 등을 찾아다니면서 탐문을 하던 그는
전기인간의 발생지로 여겨지는 지하호 근처에서 정체불명의 초등학교 소년을 만나고,
그 아이와 함께 어두운 지하호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과연, 이들은 사건의 진상을 밝혀 낼 수 있을까? 과연, ‘전기인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전기인간’을 가장해서 연쇄 살인의 완전 범죄를 꿈꾸는 것이었을까?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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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을 말하면 나타난다.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
도체(導體)를 타고 이동한다.
오래 전 군대에 의해 만들어졌다.
전기로 아무런 흔적 없이 사람을 죽인다.
이것이 토오미 시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괴담의 주인공 전기인간의 특징입니다.
괴이라는 것은 미쓰다 신조의 작품에서 그려진 것처럼
시대를 불문하고 어딘가 토속적이거나 혼령 같은 모습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전기인간이라는 컨셉은 괴이 중에서도 정말 독특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호러, 괴이, SF,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한 여대생의 민속학 리포트 취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여대생의 애인, 형사, 민속학 교수, 르포라이터, 추리소설가 등이 차례대로 등장하면서
점차 전기인간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들은 언제, 왜 지어진 것인지 모르는,
하지만 전기인간과 관련 있어 보이는 지하시설에 접근하게 되고,
또, 그곳을 늘 배회하는 의문의 초등학생과 마주하게 됩니다.
다들 전기인간이라는 괴이에 대해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채,
공포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기이한 모험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계속 머릿속에 미쓰다 신조의 ‘노조키메’와 ‘작자미상’이 떠올랐습니다.
성격은 분명 다른 작품들이지만 왠지 닮은꼴의 서사를 구사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전에 써둔 두 작품의 서평을 읽어보니 ‘전기인간’과는 사뭇 다르긴 하지만,
괴이라는 것 자체가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관과 사고에 의해
정의되고, 변질되고, 존재감을 획득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논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스터리 외에 ‘전기인간’에서 흥미롭게 읽히는 대목은
민속학 교수의 도시괴담 및 괴이에 대한 해박한 ‘강의’와
중반 이후로 전기인간의 진실을 파헤치는 르포라이터와 추리소설가의 논쟁입니다.
그야말로 괴이에 대한 다채로운 의견의 장이랄까요?
번역가 김은모 님의 서평대로 이 작품의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기작’ 또는 ‘졸작’으로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발간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라고 블로그에 글을 남기신 것 같은데,
어쨌든 엄청 색다른 간식을 먹은 느낌 정도는 충분히 맛보실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팁(?)이라면, 너무 큰 기대와 예상치 못한 반전, 충격적인 결말 등을 기대하기보다
독특한 일본괴담 한 편 읽어보겠다는 정도의 소소한 욕심으로 이 작품을 대하셔야
의외의 재미와 맛을 느끼실 수 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