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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놓아줄게 ㅣ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서정아 옮김 / 나무의철학 / 2016년 3월
평점 :
줄거리 소개하기가 참 어려운 작품입니다.
무엇을 언급해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줄이면, 5살 소년 제이콥의 뺑소니 사망사고의 진실을 찾는 이야기인데,
브리스톨 경찰청 범죄수사과 레이 스티븐스 경위와 케이트 형사의 집요한 수사가 한 축이고,
뺑소니 사고와 관련된 여성조각가 제나 그레이가 외진 해변마을로 몸을 숨긴 뒤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가 한 축입니다.
그리고, 1년 넘게 공들여온 레이와 케이트의 수사가 성과를 올린 이후의 이야기와
제나 그레이가 지우려 했던 과거사 및 뺑소니 사고의 진실 이야기가 중반 이후를 장식합니다.
약 500페이지의 적잖은 분량이지만 ‘사건과 진실’의 규모는 스릴러 치곤 소소한 편입니다.
“충격적인 사건은 때로 단숨에 일어나지만, 그에 따르는 파멸은 느리고 착실하게,
게다가 예기치 못했던 형태로 인생을 죄어오는 것이다.”라는
알라딘 소설 MD 최원호님의 서평대로, 이야기는 ‘느리고 착실하게’ 전개됩니다.
특히 서론에 해당하는 1부는 무기력한 경찰의 수사와 제나 그레이의 끝없는 절망에 대해
너무나도 ‘느리고 착실하게’ 진행된 탓에 꽤나 지루하게 읽힙니다.
작가가 각 인물의 디테일에 힘을 줘도 너무 준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인데,
가령, 경찰 주인공인 레이 경위의 불행한 가족사 같은 에피소드는
본 이야기와 잘 섞이지 못하는데 왜 굳이 집어넣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부 마지막 페이지에서 독자의 뒤통수를 ‘가볍게’ 한 방 때려준 작가는
2부에서부터 제법 속도를 내기 시작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미친 듯이(?) 가속을 붙입니다.
지루한 1부를 넘기기만 하면 마지막 페이지까지는 단숨에 달려갈 수 있지만,
‘너를 놓아줄게’의 아쉬운 점은 초반의 지루함이 아니라
납득하기 어려운 반전과 이해할 수 없는 몇몇 인물들의 행태에 있습니다.
경찰은 당연히 조사했어야 할 내용을 조사하지 않아서 스스로 사건을 위험하게 만들었고,
주요인물인 그(녀)는 얼마든지 자신이 빠진 늪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도 도움과 조언을 청하지 않은 채 무기력하고 파멸적인 삶을 자청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설정들이 개연성만 갖췄다면 서사를 떠받치는 든든한 출발점 또는 변곡점이 됐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왜?”라는 반문만 자아내는 억지스러운 설정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 즉, 많은 이들이 엮인 불행한 과거사에 대한 장황한 묘사는
왠지 불가피하고 운명적이란 느낌보다는 작가의 변명이나 핑계처럼 읽힙니다.
알라딘 서평 가운데 어느 분께서 ‘속 터지고 이해 안 되는 점’이라며
이 작품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한 글이 있는데,
꽤 센 스포일러라 이 작품을 안 읽은 독자라면 절대 미리 읽어선 안 되는 내용이지만,
다 읽은 제 입장에서는 100%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분명 디테일에 능하고, 독자를 휘어잡는 필력은 대단한 작가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토대와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비유하자면, 맨 아래 벽돌 하나만 빼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이야기랄까요?
혹평에 가까운 서평을 썼지만, 그렇다고 다시 안 볼 작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맨 아래 벽돌의 오류’만 제외하면 탄탄한 필력이 엿보이는 매력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올해 출간된 작가의 두 번째 작품 ‘나는 너를 본다’에서는
이런저런 아쉬움들 대신 작가의 진짜 필력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