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첩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존 리버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시리즈 첫 편인 매듭과 십자가이래 일부러 순서대로 읽어왔지만,

공교롭게도 바로 앞의 스트립 잭을 못 읽은 상태에서 검은 수첩을 먼저 만나게 됐습니다.

 

고백하자면, 시리즈 1~2편 이후 3편인 이빨 자국을 읽기까지 1년 반 정도 공백이 있었는데,

그것은 존 리버스를 계속 읽어야 하나?’라는 회의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빨 자국에서 이언 랜킨의 재능이 폭발하기 시작한다.”는 어느 분의 서평 때문에

큰맘(?) 먹고 존 리버스와 재회하기로 결심했고, 그 덕분에 검은 수첩까지 만나게 됐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스트립 잭을 못 보긴 했지만),

검은 수첩은 제가 존 리버스 시리즈에게 기대했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종합선물세트입니다.

어딘가 뻣뻣하고 빈틈도 많은데다, 수사마저 외부의 제보에 주로 의존하던 존 리버스는

이제 치고 빠지기에도 능숙하고, 위아래 사람들을 다루는 솜씨도 일취월장한 것은 물론,

복잡다단한 사건 속에서 어디를 파고들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멋진 형사로 성장했습니다.

물론 여전히 일상의 삶(연애나 가족문제 등)에 관한 한 그는 서툴거나 실수투성이입니다.

하지만 어설픈 남자 존 리버스의 모습은 애든버러의 반골형사 존 리버스가 갖지 못한

인간적이고 따뜻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어서 더욱 그를 응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초기에 몸과 마음이 트라우마로 쩔어있던 존 리버스는 상상도 잘 안 되는군요.^^)

 

검은 수첩의 또 한 가지 재미는 마치 중간결산 스페셜처럼

앞선 시리즈에서 조연 또는 단역으로 등장했던 인물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언 랜킨은 서문을 통해 그 이유를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는데,

경제적인 글쓰기를 위해 (중략) 머리를 싸매고 새 인물을 창조하는 것보다

그들을 다시 불러내 쓰는 편이 훨씬 낫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리버스와 호흡이 잘 맞는 동료이자 엄청난 헤비 스모커인 잭 모튼,

연쇄 소녀유괴살인 수사 당시 용의자로 몰렸던 소심한 악당 앤드류 맥페일,

그리고 최면술사이자 마약에 손을 댔다가 폐인이 된 채 돌아온 동생 마이클 등이 그들인데,

머리를 싸매고 창조한 새 인물보다 훨씬 더 적절히 활용된 것은 물론,

오랜만에 재회해서, 또는 이번에는 제대로 혼내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반갑기만 했습니다.

 

타이틀인 검은 수첩은 리버스의 파트너인 브라이언 홈스의 수첩을 뜻합니다.

여친과 다툰 후 카페에 들렀던 홈스는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는데,

리버스는 홈스가 지니고 있던 검은 수첩에서 암호가 섞인 두 개의 문장에 주목합니다.

그것은 5년 전에 벌어진 센트럴호텔 화재사건에 관한 내용으로,

화재의 원인, 당시 호텔에 있던 인물들, 불에 탄 채 발견된 신원불명의 시신 등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정보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리버스는 윗선의 방해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홈스의 수첩에 있던 두 개의 문장을 발판으로 5년 전 사건의 진상파악에 나섭니다.

문제는, 리버스의 수사가 거듭될수록 여기저기서 예상 못한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정리해놓고 보니 무척 간단한 내용이 돼버렸는데,

사실 검은 수첩은 인물도 많고, 사건도 많아서 꽤나 복잡하게 읽히는 작품입니다.

물론 이언 랜킨은 이야기가 차곡차곡 정리되도록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언뜻 보면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서

도대체 리버스의 몸이 몇 개가 필요한가, 의구심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건들이 결국 하나로 수렴될 것이란 점은 익히 예상 가능한 일이고,

이언 랜킨은 그 수렴을 전혀 억지스럽지 않게, 긴장감과 재미를 겸비하여 요리합니다.

 

5년 전 호텔 화재사건과 함께 병행되는 에피소드는

애든버러 최대의 악당 모리스 제럴드 캐퍼티, 일명 빅 제르 검거 작전입니다.

경찰과 공정거래원까지 합류한 이 작전에 대해 리버스는 무척이나 회의적입니다.

누구보다 빅 제르를 잡아넣고 싶은 리버스지만,

수십 번을 잡아넣어도 결국 그는 능구렁이처럼 법원을 빠져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 파트너 쇼반 클락을 투입해놓은 채 자신은 비공식 수사(호텔 사건)에만 매달리지만,

그 과정에서 빅 제르가 호텔 사건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리버스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빅 제르와 담판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형사 리버스와 악당 빅 제르가

(적절한 비교인지 모르겠지만) 때론 홈스와 뤼팽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어딘가 주고받는 사이또는 앙숙이면서 감싸주는 사이의 느낌이랄까요?

번역하신 최필원 님의 후기에 따르면, 시리즈 20황야의 얌전한 개들에서는

은퇴한 리버스가 킬러의 표적이 된 빅 제르를 보호하는 내용이 나온다고 하니,

앞으로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엎치락뒤치락 할지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리즈 가운데 순서대로 읽어야 좋은 경우

대표작부터 읽은 뒤 처음으로 돌아가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은 경우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존 리버스 시리즈는 후자에 속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처음 읽을 대표작을 추천하라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검은 수첩을 꼽고 싶습니다.

그런 뒤에 조금은 어설프고 뻣뻣한 초창기 존 리버스를 읽는다면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더라도 다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아직 못 읽은 스트립 잭을 읽을 계획입니다.

존 리버스 시리즈가 꽤 빠른 호흡으로 출간되고 있어서

어영부영 미루다가 또다시 신작에게 밀릴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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