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의 키스 예술 탐정 시리즈 2
후카미 레이치로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의 일본 내 출간연도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의 데뷔가 2007년이란 걸 보면 적어도 10년은 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서평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독특한 성격,

, 오페라라는 장르를 소재로 무척 고전적인 서사를 구사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정통 미스터리의 미덕을 골고루 갖추고 있지만,

복잡하고 잔혹하고 지능적인 요즘의 미스터리와 비교하면 꽤 단순하고 정직(?)한 작품이라

MSG에 잔뜩 길들여진 독자들에게는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는 작품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 애호가들에게는

모처럼 고전의 맛을 만끽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으로 읽힐 것입니다.

 

● ● ●

 

일본 최고의 연출과 성악가가 총출동한 오페라 토스카의 상연 도중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여주인공이 휘두른 칼은 소품용 칼이 아니라 진짜 칼이었고

그 칼을 맞은 상대 남자 성악가는 경동맥이 잘린 채 무대 위에서 즉사합니다.

운노 형사를 비롯한 수사팀이 오페라 관계자와 관객들을 샅샅이 탐문하지만

소품용 칼이 언제, 누구에 의해 진짜 칼로 뒤바뀌었는지 도저히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수사가 벽에 막힐 무렵, 운노 형사의 외조카인 슌이치로가 등장하면서 수사는 급진전됩니다.

전작인 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에서 큰 공을 세웠던 슌이치로는

이번 사건에서도 해박한 지식과 기발한 추리의 힘으로 운노 형사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뚜렷한 용의자조차 찾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두 번째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 ● ●

 

줄거리에서도 밝혔듯, 이 작품은 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에 이은 예술탐정 시리즈 2탄입니다.

전작을 못 읽은 탓에 슌이치로의 캐릭터를 100%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이 작품만으로도 그의 매력이나 능력은 충분히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프로에 가까운 바이올린 실력을 지녔지만 한 곳에 정착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탓에

일본은 물론 외국 여기저기를 방랑자처럼 떠돌며 아르바이트로 삶을 이어가는 슌이치로는

어린 시절부터 경찰이던 외삼촌 운노를 동경했으면서도

정작 규칙과 조직에 구속받는 경찰의 길을 택하진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에서 가장 희화화된 캐릭터인 오베시미 경부와 슌이치로의 케미입니다.

수사팀의 수장인 오베시미는 다분히 연극적인 캐릭터로,

아무 때나 잠이 들고, 엉뚱한 소리만 내지르면서 부하들을 달달 볶는 인물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고, 직관적으로 떠오른 용의자를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등

모두에게 민폐 그 자체이며, 제발 좀 없어져줬으면 하는 특이한 캐릭터입니다.

그런 오베시미가 유독 슌이치로와는 호흡이 잘 통하는데,

그 사연은 전작인 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을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페라 토스카의 줄거리를 알고 있으면 이 작품을 좀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자세하게 알 필요까지는 없고, 검색창에 정리된 요약된 줄거리 정도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노력마저 귀찮아하는 독자들을 위해 여러 설명을 덧붙입니다.

특히 슌이치로는 탐정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오페라 해설가로서의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그는 토스카뿐 아니라 오페라 전반의 역사라든가 예술적 특징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는데,

특히 연출가에 따라 오페라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부분은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다만, 독자에 따라 이 대목이 좀 지루하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미스터리는 그리 심오해 보이지 않고, 경찰들은 만화 속 캐릭터처럼 어딘가 붕 떠있는 듯한데

작가 혼자 오페라 자체에 과도한 열정을 쏟고 있는 느낌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두 번째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오히려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되고,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인물들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때쯤에 이르러 작가는 독자에게 도전장을 던집니다. 미공개 단서까지 밝히면서 말이죠.^^)

그리고 막판 스퍼트를 통해 진범과 범행동기를 알아낸 슌이치로는

보란 듯이 범인을 경찰서까지 데려와 운노 형사와 오베시미 경부를 놀라게 만듭니다.

 

이런 형식적인 면까지도 고전미가 물씬 풍겨서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는데,

문제는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 역시 바로 이 결말 부분이란 점입니다.

뭐랄까.. 지나치게 천재적인 주인공 때문에 오히려 미스터리의 맛이 희석됐다고 할까요?

슌이치로의 추리는 나름 개연성이 있긴 하지만 그 과정은 사실 엄청난 비약입니다.

엄청난 직감이나 육감 없이는 불가능한 추리,

결과만 듣고 보면 수긍이 가지만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추리를 구사한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천재적 주인공의 비약적 추리에 의한 결말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슌이치로의 마지막 활약이 꽤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아직 못 읽은 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은 그림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과연 그 작품에서는 슌이치로의 천재성이 어떻게 발휘됐을지 궁금합니다.

, 후카미 레이치로의 예술탐정 슌이치로 시리즈가 이후에도 계속 출간됐는지 모르겠지만,

고전미 넘치는 서사와 정통 미스터리의 맛, 다소 연극적인 캐릭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다른 예술분야에서도 활약할 슌이치로의 모습을 많이 기대하게 될 것 같습니다.

너무 복잡하고 너무 잔혹한 서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독자라면

한번쯤 후카미 레이치로의 작품으로 휴식을 취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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