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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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자기애와 순수한 악의,

인간의 심연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악의 정령,

스티븐 킹의 미저리의 간호사 애니와 미쓰다 신조의 작품 속 초현실적 악령의 조합...

 

전편인 리카의 서평에서 리카의 캐릭터를 제 나름대로 지칭했던 표현들입니다.

그녀는 사랑에 관한 한 독점과 소유밖에 모르는 광기에 사로잡힌 스토커이며,

자신의 사랑을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자들을 눈 하나 깜짝 않고 토막 내는 연쇄살인마입니다.

두드러지는 큰 키에 뼈만 남은 듯한 흙색 피부, 온몸에서 풍기는 썩은 냄새 등

어디에서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특징을 가졌지만,

10년 전, 사랑하던 남자의 토막난(그러나 여전히 살아있던) 몸통을 들고 사라졌던 그녀는

경찰력이 총동원된 수사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자신의 존재를 감춰왔습니다.

 

● ● ●

 

그랬던 그녀가 다시 돌아옵니다.

리카는 10년간 애지중지 사랑했던, 하지만 이젠 죽어버려 쓸모가 없어진

한 남자의 토막난 몸통을 야산에 내다버림으로써 자신의 복귀를 알립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두 명의 경시청 여형사 나오미와 다카코가 리카의 뒤를 쫓습니다.

 

경시청 콜드케이스 수사반, 즉 미제사건 수사반에 근무하며 리카의 흔적을 조사해온 나오미는

10년 전 리카를 추격하다가 그녀의 참혹한 범죄에 충격을 받고 쓰러진 뒤로

지금까지 의식을 잃은 채 병상에 누워있는 노형사 스가와라의 애제자이기도 합니다.

나오미와 다카코는 상부의 지시와 무관하게 그녀들만의 수사를 전개시키고,

끝내 리카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 10년 만에 돌아온 리카는 예전보다 더 난폭해졌고,

그녀의 일그러진 자기애와 순수한 악의는 더욱 날카롭게 벼려졌습니다.

나오미와 다카코의 집념과 의지 같은 건 리카에겐 하찮고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합니다.

 

● ● ●

 

사실 리카의 복귀는 무척이나 기대됐던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소시오패스를 넘어 그야말로 악의 순수한 응집체 같던 리카가

1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과연 무슨 참극이 벌어질까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출발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야산에서 발견된 몸통이 10년 전 리카의 마지막 범행대상이었던 남자라는 점,

그 남자가 몸통만 남은 채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다는 점,

그리고 리카가 새로운 사랑을 찾기 위해 또다시 만남사이트를 전전한다는 점 등

그녀의 복귀는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으로 시작됩니다.

 

, 리카로 인해 자책과 자괴에 빠진 끝에 식물인간처럼 망가진 스가와라 형사의 애제자이며

미제사건 수사팀에서 10년 간 리카를 추적해온 나오미의 캐릭터는 매력적입니다.

나오미와 다카코가 조직의 방침을 무시하고 따로 리카에게 접근하겠다는 발상이라든가,

그를 위해 기발한 유인책을 쓰는 대목은 긴장감을 극적으로 유발하는 설정들입니다.

리카는 여전히 잔혹한 방법으로 희생자를 해체하고,

눈에 띄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눈은 물론 촘촘한 CCTV도 무력하게 만듭니다.

수사 도중 위기에 처한 나오미의 모습은 읽기 불편할 정도로 참혹합니다.

리카의 복귀에서 기대됐던 덕목들이 곳곳에서 풍성하게 발견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제가 내린 한 줄 평은 너무 허술하고 안이했던 후속편입니다.

300페이지를 갓 넘길 정도의 짧은 분량임에도

작가는 다카코의 연애 등 엉뚱한 묘사에 적잖은 분량을 할애한 반면,

정작 리카에 관해서는 인색할 정도로 분량을 아꼈습니다.

모처럼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나쁜 짓(예상보다) 별로 안 하고,

복귀한 이유나 목적도 제3자의 추측으로만 설명될 뿐이라 존재감이 미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편에서도 의문이었지만) 특히 투명인간처럼 모든 감시망을 빠져나가는 그녀의 신통력은

이번 작품에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반복적으로 묘사되어 현실감을 떨어뜨렸습니다.

나오미와 다카코의 수사는 복잡하지도 않고 별 난관도 없이 순조롭게 전개될 뿐만 아니라

10년 차 미제사건 수사팀이라는 이력이 무색할 정도로 단순-초보에 가깝습니다.

그런 그녀들의 수사조차 못 따라가는 경시청 수사1과는 한심해 보일 정도입니다.

 

리얼 호러물과 판타지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극도의 공포심을 발휘했던 전편에 비해

리턴11년 만에 쓰인 후속편으로서는 여러 면에서 자격 미달이라는 생각입니다.

3편인 후속작 리버스가 리카의 비기닝 또는 프리퀄 스토리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봤는데,

부디 리턴의 아쉬움을 털어낼 수 있는 작품이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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