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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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작품을 많이 읽진 못했지만 읽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판타지나 호러, 비현실의 세계를 소름 돋게 그리면서도

천연덕스럽게 진짜 현실감 있는캐릭터나 스토리로 포장해내는 그의 필력은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니면 갖추기 힘든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덕분에 장르도 잊은 채 그가 펼쳐놓은 사실적인 세계 속으로 푹 빠져들게 되고,

공포와 기괴함을 느끼는 체감의 강도는 그만큼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리바이벌은 두 개의 서사, 즉 주인공 제이미 모턴의 성장 소설이면서 동시에

전직 목사이자 전기(電氣)에 미친 남자 제이컵스의 괴담이 뒤섞인 작품입니다.

제이미의 성장기가 지독히 사실적인 20세기 후반의 미국 청년의 명암을 그리고 있다면,

제이컵스의 괴담은 전기(電氣)와 신()과 지옥을 그린 끔찍한 판타지에 다름 아닙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서사는 전기의 힘을 매개로 연결되고,

무려 50여년의 시간적 무대를 통해 두 남자의 방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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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년에서 마약에 쩐 록 아티스트를 거쳐 레코딩 프로듀서로 성장하는 제이미는

인생의 고비마다 제이컵스와 마주치게 됩니다.

목사로 재직 중 아내와 아들을 잃고 제이미가 살던 마을을 떠난 제이컵스는

이후 박람회에서 번개 사진사가 되어 시골사람들을 현혹시키더니,

난데없이 성스러운 반지로 병든 자를 고쳐주는 열광적인 목사로 변신합니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전기의 힘으로 병든 자를 구제하고 헌금을 끌어 모읍니다.

 

제이컵스가 자랑하는 전기의 힘은 치유 이상의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제이미는 그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두려워하지만,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친형, 연인, 동료까지 전기의 힘의 수혜자가 된 덕분에

그와의 오랜 악연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제이컵스를 조심하라는 현명한 조언을 몇 차례나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이미는 분노와 호기심이라는 함정에 빠진 채 자꾸만 제이컵스의 곁을 맴돌았고,

결국 그의 궁극의 치유 현장에서 평생 잊히지 않을 끔찍한 사건과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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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현실적인 제이미지극히 비현실적인 제이컵스의 콤비 플레이도 그렇지만,

제이컵스의 괴담의 핵심인 전기와 신이 각각 과학과 종교를 대변한다는 점도 무척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인물도 소재도 서로 뒤섞기 힘든 정반대의 특질들을 갖고 있는 셈인데,

바로 이 지점에서 스티븐 킹의 마력 같은 힘이 드러납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명백히 비현실적인데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그저 허구에 불과한 호러일 뿐인데 내 옆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생생함이 발산됩니다.

오래 전에 본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콘스탄틴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런 묘한 위화감이야말로 리바이벌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자 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샤이닝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폭주하는 호러 서사를 기대했던 독자에겐

적잖은 분량을 차지한 초반부의 제이미의 성장기가 낯설거나 지루하게 읽힐 수도 있지만,

아날로그 시대의 첫사랑, 꿈과 좌절, 가족사 등을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재미도 있는데다,

후반부를 위한 큰 밑밥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전개라고 생각합니다.

전기의 힘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난해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략의 추정만으로도 뒤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으니

너무 골치 아프게 여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스티븐 킹이 처음 도전했다는 탐정 추리소설 미스터 메르세데스도 재미있었지만

역시 그의 진짜 매력은 현실 저 너머의 세상과 공포를 그린 작품에서 발휘되는 것 같습니다.

체질적으로 안 맞는 분은 어쩔 수 없지만 그의 전작들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리바이벌역시 한 번에 완주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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