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닷컴
소네 케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호러에 가까운 단편집 ’, 재치있는 트릭과 우울한 미래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 열대야’,

오쿠다 히데오의 최악을 연상시켰던 장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그리고 첩보물을 표방한 침저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접하면서

믿고 볼 수 있는 작가중 한 명으로 소네 케이스케를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암살자 닷컴역시 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소네 케이스케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연작단편집입니다.

 

경찰로도, 가장으로도 모두 실패한 삶을 살면서 부업 삼아 암살자가 된 형사,

노인 도우미였다가 우연히 습득한 휴대폰 덕분에 생계를 위해 암살자가 된 중년의 주부,

전설의 암살범이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 위상도 예전 같지 않은 장년의 전문 킬러 등

어딘가 암살자와는 거리가 좀 먼 인물들이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조직은 인터넷 사이트 고로시야닷컴(.com)을 통해 의뢰를 공지하는데,

조직과 계약한 암살자들은 조건이나 암살 대상을 보고 각자 입찰에 응해야 합니다.

가장 낮은 금액을 써낸 암살자가 낙찰 받게 되고,

미션이 마무리되면 우편으로 현금을 받게 되는 구조입니다.

암살자가 늘어나면서 경쟁은 치열해지고, 낙찰가는 점점 하향 추세입니다.

취미형 암살자나 생계형 암살자는 물론

달리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서 계속 암살자로 활동하는 인물도 있습니다.

문제는 낙찰 받은 의뢰를 처리하지 못했거나 조직의 정보를 누설할 경우

참혹한 응징을 피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조직내에는 실패자나 배신자만 전문 처리하는 암살자도 있는데,

이들에겐 사체 훼손이라는 특별한 미션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수록된 네 개의 에피소드는 연작단편집답게 따로 또 같이전개됩니다.

인물들과 사건들이 서로 정교하게 얽혀있어서, 그 접점을 찾아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앞선 에피소드에서 무심코 언급됐던 사건이 뒤의 에피소드의 중심 스토리가 되기도 하고,

6년이란 시간차를 두고 인물들이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암살자닷컴이라는, 어딘가 희극적인 냄새를 풍기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무겁고 어두운 암살자들의 세계와 잔혹한 사건을 그린 내용은 아닙니다.

오히려 웃음과 긴장과 공포가 한데 섞인 독특한 블랙유머의 분위기를 풍기는데,

이는 소네 케이스케가 전작들에서부터 과시해온 그만의 특별한 매력입니다.

첩보물을 표방한 침저어를 제외하곤, 대부분 어딘가 나사가 하나 풀렸거나,

삶의 밑바닥을 전전하는 등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앞에 주어진 상황과 미션은 정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상한 일들 뿐입니다.

우여곡절과 반전 끝에 인물들은 행복해지기도 하고, 나락에 빠지기도 하고,

또는 행복한 건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기묘한 엔딩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암살자닷컴역시 그런 인물과 상황과 미션으로 채워진 작품입니다.

 

교훈이나 감동이나 여운과는 좀 거리가 멀지만,

짧은 시간 안에 재미와 긴장을 함께 맛보기엔 더없이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언젠가 소네 케이스케가 정색을 하고 묵직한 서사를 내놓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비슷한 맛을 보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강추합니다)

아직까지 제게 소네 케이스케는 스트레스 종결자 또는 재능 만점의 엔터테이너이기 때문에,

다음 작품에서도 그만의 그런 특별한 매력을 발휘해주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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