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도쿄 외곽의 한 맨션에서 발견된 잔혹한 살육의 현장.

그리고 그곳을 탈출한 10대 소녀와 그곳에서 체포된 중년의 여자.

두 여자의 증언을 통해 드러난 악마나 다름없는 조종자의 정체와

그의 조종에 의해 서로를 고문하고, 살해하고, 토막냈던 수많은 사람들의 비극.

증언은 엇갈리고 조종자의 행방은 오리무중.

조종자의 지시대로 참혹한 살육을 벌인 자들은 왜 무기력하게 그에게 굴복했던 것일까?

그들은 왜 도망치지도,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던 것일까?

살아남은 두 여자의 눈에서 읽히는 조종자에 대한 존경과 욕정의 빛은 무엇을 뜻하는가?

과연 그 맨션 안에서 벌어진 참극의 진실은 무엇일까?

 

● ● ●

 

읽는 내내 이런저런 단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살육에 이르는 병’, ‘외과의사’, ‘종의 기원’, ‘살인의 추억’, ‘추격자’...

 

, 이런저런 질문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기질은 타고난 것일까, 습득된 것일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먹잇감으로 삼으려는 욕망은, 특수하다 해도, 결국 자연의 섭리일까?

그 욕망은 언젠가는 포만감과 함께 소멸되는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허기진 상태로 남아 끝없이 새로운 먹잇감을 요구하는가?

혹시, 그 욕망은 강한 전염성을 지닌 것은 아닐까?

 

사실, 잔혹하고 엽기적인 묘사에 대해서는 워낙 사전정보를 많이 접한 탓에

그다지 충격적으로 읽히진 않았습니다. 예상보다는 훨씬 약했다고 할까요?

꽤나 충격적이고 심각하게 비위를 건드리는 장면들임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 어떤 을 넘지 않고 필요한 팩트만 묘사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만일 작가가 작심했다면 아마 한 사람의 해체를 위해 한 챕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대한 간결하고 담담한 투로 그려진 고문-살인-해체-처리과정은,

어쩌면 잔혹함에 가려 주제가 희석될 수도 있다는 작가의 우려(?)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혼다 테쓰야가 실화를 바탕으로 굳이 이런 끔찍한 서사를 기획한 것 자체가

주제를 강조하려는 분명한 목적을 지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주제란 앞서 언급한 질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악의 기원과 정체, 전염성과 생명력에 대한 근원적 고민이 그것입니다.

혼다 테쓰야는 탐문과 취조를 맡은 경찰들을 통해 이런 주제를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때론 그 수위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작위적으로 읽힐 때도 있습니다.

결국 짐승의 성은 미스터리, 트릭, 반전보다 악에 대한 보고서의 기운이 강한 작품입니다.

 

문제는, 캐릭터나 스토리마저 주제에 맞춰 전개된다는 의심(?)이 들게 만든 점입니다.

먹잇감을 좌지우지하는 조종자의 전능함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가?

먹잇감들은 왜 도망치지도, 저항하지도 않은 채 조종자의 뜻대로 참극을 연출했는가?”

물론 지속적인 악의 폭력은 먹잇감을 길들이거나 자포자기하게 만들거나 전염시킨 끝에

결국 자기방어에 대한 의지마저 잃어버리게 만들 수 있겠지만,

위의 의문은 작품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문 자체가 이 작품의 모티브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 혼다 테쓰야가 기타큐슈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조사하면서 똑같은 의문을 가졌고,

그 의문이 이 작품의 출발점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혼다 테쓰야는 그와 그녀와 그들이 폭력에 굴복하고 전염된 끝에

스스로 악으로 진화한 실제 사건을 보곤 의문을 가진 끝에 이 작품을 기획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와 그녀와 그들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조종하여 짐승의 성에 가둔 악의 전능함도 제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비록 추정이지만, 그러지 않곤 이 작품의 모든 것을 순순히 납득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혼다 테쓰야가 강조한 내용 중 하나가 짐승은 내 주위 어디에도 존재 가능하다입니다.

말하자면 나의 옆집이나 앞뒷집이 짐승의 성일 수도 있다는 얘기죠.

재미있게 읽긴 했어도 몸과 마음 어딘가에 끈적끈적함과 불편함도 함께 남는 작품입니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그것들이 저절로 사라지거나 잊히길 바라지만,

그렇게 호락호락 기억에서 물러나주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은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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