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세상
톰 프랭클린.베스 앤 퍼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1927년 봄, 역대 최악의 폭우로 범람 위기에 직면한 미시시피 강 인근의 작은 도시 하브나브.

이곳에 밀주단속원 햄과 잉거솔이 밀주 제조업자를 찾아내기 위해 찾아옵니다.

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기를 떠맡게 된 잉거솔은

하브나브에서 입양가정을 찾던 중 딕시 클레이라는 여인과 만나게 됩니다.

문제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 제시가 이 지역 최고의 밀주 제조업자이자 공급책이란 점입니다.

한편으론 밀주제조업자를 찾아내야 하고,

한편으론 정부 보상을 노리고 제방을 폭파하려는 자들을 저지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

잉거솔은 본연의 임무 대신 딕시 클레이와 아기에게 온 신경을 쏟습니다.

덕분에, 밀주를 앞세워 소도시를 장악한 딕시의 남편 제시의 치명적인 음모도,

제방을 폭파시켜 이익을 보려는 자들의 끔찍한 계획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 ● ●

 

톰 프랭클린의 미시시피 미시시피를 인상 깊게 읽은 덕분에

1927년 수몰 위기에 빠진 미시시피 강 인근의 소도시를 무대로 한 이 작품에 단번에 관심이 꽂혔습니다.

특히 능력 있는 베테랑 밀주단속원, 위스키를 앞세워 소도시를 장악한 밀주제조업자,

제방 폭파를 둘러싸고 갈라선 주민 등 등장인물들 역시 흥미롭게 설정된 것 같아서

미시시피 미시시피이상의 스릴러로서의 매력을 기대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작품은 역사물이면서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차용하긴 했지만

본류는 작품 속 여주인공 딕시 클레이의 독백대로 가족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살인과 밀주 제조, 모래포대 쌓기와 파괴 공작원,

다이너마이트와 폭우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략) 어울리지 않는 남편과 결혼해서 날마다 조금씩 죽어갔던 여자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자신이 투명인간 같다고 생각했던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해.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다.

우리가 어떻게 가족이 되었나를 말해주는 이야기이지.”

 

말하자면 자연의 힘과 인간의 탐욕이 동시에 빚어낸 최악의 참사를 겪어낸 뒤

몸과 마음은 비록 만신창이가 됐지만 결국 사랑의 힘으로 가족을 이뤄낸 이야기라고 할까요?

거기에 절묘하게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서사를 끼워 넣음으로써

작가는 영미권 특유의 가족애를 강조한 스릴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시시피 미시시피의 매력을 기대했던 독자에겐 좀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다 읽은 후에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남자 주인공 잉거솔의 챕터는 톰 프랭클린이,

여주인공 딕시 클레이의 챕터는 그의 아내 베스 앤 퍼넬리가 집필했다고 합니다.

읽다 보면 곳곳에서 문장의 색깔이나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가 차이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된 셈입니다.

아무래도 잉거솔의 챕터가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고,

딕시 클레이의 챕터가 심리 중심으로 집필된 탓에 그렇게 읽힐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현재의 이야기만큼이나 두 사람의 과거사가 비중 있게 그려지고 있는데,

그로 인해 초반부가 느린 템포를 지니게 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아무튼...

밀주와 흑백 갈등과 전근대성이 어지럽게 뒤얽혀있던 1927년을 배경으로

두 부부 작가는 상상을 초월한 폭우와 홍수, 금주법이 몰고 온 빛과 그림자,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사상 최악의 참사, 그리고 그 안에서 우연과 운명 속에 피어난 사랑을

때론 스릴러처럼, 때론 대하소설처럼, 때론 멜로나 가족소설처럼 다양한 형태로 그려냈습니다.

 

주류 서사 외에도 당시의 풍경이나 풍습에 대한 꼼꼼한 묘사가 눈길을 끌었는데,

건축, 패션, 음악, 교통 등 마치 눈앞에 펼쳐져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진

1927년 미국 남부 소도시의 민낯은 때론 이야기 자체보다도 매력적으로 읽히는 부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톰 프랭클린 식의 빠르고 묵직한 서사를 좋아하는 편이라

베스 앤 퍼넬리의 시적인 언어로 집필된 부분들이 약간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밀주와 폭우와 살인이 뒤엉킨 기울어진 세상을 헤쳐 나온 잉거솔과 딕시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흥미로운 20세기 초반의 미시시피의 묘한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있어서

혹 스릴러를 기대했다가 실망한 독자라도 충분히 빠져들 만한 힘과 매력을 지녔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다시 표지를 살펴보니

거대한 물결 속에 처연히 노를 젓는 한 사람의 모습이 새삼 더 애틋하게 보였습니다.

이야기를 잘 함축한, 최근 들어 손에 꼽을 만한 표지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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