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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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인간에게 한치 앞이라도 내다볼 줄 아는 능력이 있다면

세상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겠죠.

행복과 불행은 한치 앞을 못 보는 인간을 조롱하듯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곤 합니다.

그리고 찰나 같은 한순간에 그 인간의 미래를 훅 바꿔놓습니다.

어처구니없거나 믿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죠.

 

라이프 오어 데스의 주인공 오디 파머는 찰나 같은 순간에 들이닥친 행복과 불행덕분에

삶 자체가 누더기처럼 조각조각, 또는 롤러코스터처럼 업다운을 거듭해온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가 만끽할 수 있었던 행복은 너무 짧았고,

그가 감내해야 했던 불행은 너무도 크고, 깊고, 길었습니다.

만일 오디 파머에게 한치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었다면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불행이란 영원히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너무도 안타깝고 애틋한 일입니다.

 

● ● ●

 

10년 전, 현금수송차 강도사건으로 700만 불이란 거액이 사라진 현장에서

오디 파머는 경찰의 총격에 머리를 다친 채 생포됐습니다.

공범들은 죽거나 도주했고, 700만 불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모두가 700만 불의 행방을 궁금히 여겼고, 오디만이 답을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수감 기간 내내 오디는 갖은 폭력과 협박에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러던 그가 만기 출소 하루를 앞두고 홀연히 교도소를 탈출합니다.

상원 의원과 유력인사 등 거물급들이 나서서 오디의 행방을 뒤쫓는가 하면,

연방수사국 요원은 물론 10년 전 사건 현장에 있던 보안관까지 추격전에 나섭니다.

목숨을 건 오디의 탈주극이 전개되는 동안

그를 영원히 묻어버리려는 자들과 그의 진실을 알아내려는 자들이 대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10년 전 강도사건의 충격적인 실체가 서서히 드러납니다.

 

● ● ●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긴박하게 전개되는 오디의 탈주극이 하나이고,

유년기부터 현재까지 행복과 불행이 교차했던 오디의 삶에 대한 회고가 나머지 하나입니다.

두 이야기는 10년 전 오디를 파멸시켰던 강도 사건의 진실에서 교차합니다.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른 뉘앙스의 서사들입니다.

전자가 전형적인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다면,

후자는 평범하고 모범적인 한 청년이 어떻게 밑바닥으로 추락했는지,

그 밑바닥에서 만난 한 여인을 향해 얼마나 진실하고 깊은 사랑을 쏟아 부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됐는지 등 묵직한 연대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릴러 대가들이 만들어낸 매력적인 서사의 공통점은

단지 사건에만 몰입하지 않고 삶의 무게와 희로애락을 잘 버무려냈다는 데 있습니다.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가 그렇고,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가 그렇습니다.

그들에 비해 라이프 오어 데스의 오디 파머는 지극히 평범하기 그지없는 캐릭터지만

그의 삶의 궤적이 스릴러와 만나면서 일으킨 화학반응의 강도는 결코 그들에 못지않습니다.

그만큼 오디 파머의 희로애락이 리얼하고 치열하게 그려졌다는 뜻입니다.

스티븐 킹이 범죄소설들이 자꾸 잊어버리는 영혼을 가진 스릴러라고 호평한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같은 이유 때문에 작가의 대표작인 조 올로클린 시리즈에 비해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스릴러 부분에서는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긴박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오디의 삶을 회고하는 부분에서는 그가 겪은 모든 감각과 감정들을 디테일하게 그리기 위해

적잖은 분량의 문장들이 동원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라보는(바라봤던) 풍경들, 그의 가슴을 스치는(스치고 갔던) 설렘과 고통들,

그리고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해 운명처럼 겪어야만 했던 행복과 불행들...

 

속도감 있는 스릴러를 기대했던 독자에겐 좀 지루하게 읽힐 수도 있는 대목들이지만

결말부에 가서 독자를 울컥하게 만들고 긴 여운을 드리우게 만드는 것은

결국 작가가 오디 파머라는 한 개인의 삶과 사랑에 대해 정성스레 쌓아온 서사의 힘입니다.

저 역시 좀처럼 잘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 때문에 예상보다 하루이틀 시간이 더 걸렸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는 왜 그 많은 분량들이 필요했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디 파머가 겪은 찰나의 순간에 들이닥친 불행은 그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겪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겪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운명입니다.

어쩌면 이 서평을 채 마무리 짓기도 전에 제게 그 순간이 닥칠 수도 있는 일이겠죠.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고, 다 읽은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이야기처럼만 읽힌 여느 스릴러보다 큰 공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라이프 오어 데스는 한순간에 종이 한 장 차이로도 갈릴 수 있는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운명을 단적으로 잘 표현한 제목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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