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실종자 1 - 식죄 ㅣ 타카시로 시리즈
도바 순이치 지음, 한성례 옮김 / 태동출판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책장에서 한참을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도바 슌이치의 ‘실종자 1’을 꺼냈습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식죄(蝕罪, 죄로 인해 썩어 들어간 상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안 쓰는 말이라 그런지 부제로만 활용하고 본제목은 ‘실종자 1’로 출간됐습니다.
45세의 경감 타카시로 켄고는 경찰청 실종자 수사과 3분실(分室) 형사입니다. 이름은 그럴 듯하지만 사실 실종자 수사과는 전시 행정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일 뿐입니다. 아무도 가기 원치 않는 이곳은 각 경찰서에서 소위 낙오자로 찍힌 자들로 구성돼있습니다. 미팅과 치장에만 정신 팔린 ‘있는 집’ 딸, 사건만 나면 떨기부터 하는 무능한 겁쟁이, 늘 몸이 먼저 반응하는 운동선수 출신 과격파, 지병 때문에 서류 작업만 가능한 말년 형사, 최고책임자지만 기회만 되면 실적을 올려 조직 내 주류로 올라설 궁리만 하는 실장이 그들입니다.
이곳에 좀 특이한 이력을 지닌 두 사람이 배속됩니다. 타카시로 켄고는 한때 경시청 수사1과 최고의 형사였지만, 7년 전 비극적인 사고를 겪으면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이젠 경찰 내부에서도 골칫덩이가 된 자입니다. 술과 담배와 커피에 찌든 채 “월급을 받기 위해 경찰로 살아간다.”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닐 정도로 그에겐 야망도 승부욕도 사라진 상태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타카시로와는 성별도 나이도 성격도 다른 27세의 묘진 메구미입니다. 수사1과로의 승진을 코앞에 뒀던 열혈 여형사 메구미는 엉뚱하게도 남의 문제에 휘말려 좌천 아닌 좌천을 당해 실종자 수사과에 오게 됐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가도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고 판단될 때는 대선배 타카시로마저 꼼짝 못하게 만드는 돌직구 캐릭터입니다.
서류작업이나 하면서 대충 출퇴근만 해도 되는 실종자 수사과에 발령받은 타카시로는 성실한 직장인이 결혼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증발한 특이한 실종사건 조사를 지시받습니다. 의욕 같은 건 진작 개나 줘버렸던 타카시로는 자신도 모르게 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새카만 후배 메구미와 번번이 충돌하며 사라진 남자의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조사를 할수록 남자의 과거에 의문점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고, 타카시로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요할 정도로 수사에 임합니다.
‘타카시로 시리즈’의 첫 편이라 그런지 캐릭터 소개에 꽤 많은 분량이 할애된 작품입니다. 실종자 수사라는 본 스토리에 충실하면서도 그 안에 자연스럽게 타카시로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고 있고, 앞으로 콤비로 활약할 것으로 보이는 메구미와의 관계 설정도 매력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왕년의 스타 형사였지만, 지금은 숙취와 두통을 달고 사는 무기력한 타카시로와 실종자 수사과에서 실적을 올려 수사1과로 승진하려는 야심찬 메구미의 조합은 지금껏 봐온 남녀형사 커플 중 단연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설정입니다.
사건 자체는 무척 심플합니다. 실종된 남자의 주변을 조사하고 그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출판사 책 소개에도 있듯) 실종은 죽음보다 더 잔혹한 ‘공중에 매달린 상태’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 큰 상처를 주는 사건입니다. 무기력하게 인생을 소모하던 타카시로가 처음 투입된 실종수사에서 마음을 고쳐먹고 전력을 다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물론 이 사건은 그저 단순한 실종이나 납치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라진 남자의 과거를 캐면서 그가 실종될 수밖에 없었던 ‘사건성’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또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만, 어느 정도 예상된 흐름대로만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하고, ‘악’의 비중 역시 소소한데다 실종의 계기도 조금은 심플하게 처리돼서 팽팽한 긴장감이나 대단한 반전을 주는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타카시로 시리즈의 첫 편이라는 점에서 보면 분명 매력적인 출발을 알린 작품입니다. 스토리만큼이나 기대되는 타카시로와 메구미 사이의 케미가 여중생 실종사건을 다룬 시리즈 2편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지는 것은 물론, 단역 또는 미약한 조연에 머물렀던 실종자 수사과의 다른 멤버들도 뭔가 제대로 된 ‘밥값’을 하지 않을까, 기대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