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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나나카와 카난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부모의 사망이나 이혼, 학대 등 가정의 품속에서 살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두 살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아이들이 생활하는 아동양호시설 나나미(七海)학원.
그곳에서는 '일곱 바다'라는 한자 이름에 어울리게 일곱 가지 괴담이 전해 내려온다.
여러 소녀와 얽힌 그 괴담들은 지금도 학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사건에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를 던지고 있다.
보육사 키타자와 하루나는 아동복지사 카이오와 함께 여러 수수께끼를 풀면서
아이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려 노력한다.
(출판사의 책 소개글을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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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곶 덕분에 마치 일곱 개의 바다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듯한 풍광을 자아내는
나나미 해변 언덕의 아동양호시설을 배경으로
성장 스토리와 소프트한 미스터리가 전개되는 나나카와 카난의 단편집입니다.
‘소프트’라는 표현을 썼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소년, 소녀들이 맞닥뜨린 미스터리는
어쩌면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달리 ‘시설’에서 유년기~청소년기를 보내야만 하는
그들만의 깊은 상처만큼이나 단단하고 두려운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그 미스터리는 나나미 학원에 전해 내려오는 7개의 오랜 괴담과 연결돼있어
이제 2년차 보육사로서 아이들의 고민과 상처를 돌봐야할 24살 하루나에게도
적잖은 무게의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딱히 감동적인 결말을 끌어내려 애쓰지 않은 작가의 담담한 문장도 좋았고,
비록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아이들을 위해 진심을 다하는
보육사 하루나와 아동상담사 카이오의 캐릭터도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7개의 단편에 등장하는 소년, 소녀들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방어하고 키워가는 지혜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지혜를 발휘하여 나나미 학원에서 일어난 미스터리를 극복해 나갑니다.
미스터리의 해결은 대부분 보육사 하루나와 아동상담사 카이오의 몫이지만
그 과정에서 소년, 소녀들은 과거의 상처 덕분에 얻게 된 조숙함과 어른스러움을 통해
미스터리의 진실과 결과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해냅니다.
물론 ‘소설이니까 가능한’ 작위적인 해피엔딩도 간혹 보이긴 하지만
작가는 가능한 한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경계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사실 아동양호시설에 수용된 아이들의 사연이라고 하면
사토 세이난의 ‘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에 등장하는
지독하게 학대받은 소녀 아키가 생각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상처란 아무리 뛰어난 보육사나 상담사가 노력한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영원히 뿌리내릴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는 나나미 학원 자체를 현실감 없는 판타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나미 학원의 아이들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짜낸 긍정의 힘으로
자신의 상처를 보듬으며 성장하는 아이들도 분명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입니다.
번역하신 박춘상 님께서 이 작품을 ‘희망 미스터리’라 지칭한 것도 그런 면 때문일 것입니다.
수록작 별로 (감동 또는 미스터리라는 면에서) 약간의 편차가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의지로 세상과 적극적으로 맞서려는 주인공이 등장한
‘지금은 사라져버린 별빛도’와 ‘절대 반지’가 가장 매력적으로 읽혔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전을 전해준 마지막 수록작 ‘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도 괜찮았구요.
잔혹하고 리얼하고 독한 미스터리에 익숙한 독자에겐 말랑말랑한 동화처럼 읽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1년에 한두 편쯤 이런 ‘해독제’ 같은 작품도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설령 판타지라 하더라도 험하고 모난 세상 어딘가에
아주 작지만 따뜻함이나 희망이란 게 아직 남아있다고 위안 받는다면
그 역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