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술래잡기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13.67’의 찬호께이, ‘사악한 최면술사의 저우하오후이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나는 중국어권 작가입니다. 최근 개성 강한 중국어권 장르물들이 눈에 들어오곤 했는데, ‘사신의 술래잡기역시 독특한 설정과 기발한 캐릭터, 흥미로운 연작 구성에다 이야기를 완결시키지 않은 덕분에(그래도 찜찜함 같은 건 없습니다) 후속작을 안 보려야 안 볼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신의 술래잡기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 모삼과 무즈산은 조금은 비현실적인 캐릭터입니다. 두 사람 모두 있는 집 자식인데다 거의 초인간적인 재능을 타고났습니다. 모삼은 심리 수사와 현장 수사, 프로파일링에 모두 탁월한 천재적 탐정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정확도 99.9%의 프로파일링을 장착한 채 21세기에 부활한 셜록 홈즈랄까요?

무즈산은 공교롭게도 셜록 홈즈의 동료 왓슨 박사처럼 의학 분야의 천재입니다. 그는 법의학의 모든 영역을 꿰뚫은 천재이면서 모삼 못잖은 추리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캐릭터가 이러하다 보니 그들의 사건해결능력은 중국 경찰에겐 신화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모삼은 전대미문의 연쇄 토막살인범에게 습격을 받아 약혼녀를 잃은 것은 물론 본인도 죽음 직전까지 이른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살인범을 L이라 부르며 그의 행방을 캐내려 하지만 오히려 L은 두 사람에게 위협적인 메시지와 함께 게임을 권해옵니다. 자신이 낸 문제를 풀지 못하면 3일 이내 또 다른 토막 희생자를 만들 것이며, 풀어낸다면 예비 희생자 1명을 살려주겠다는 조건을 붙입니다. 추가적인 L의 희생자를 막기 위해 두 사람은 게임을 받아들이지만 그가 낸 문제들은 하나같이 기이한 미제 사건 또는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었고, 두 사람은 기일 내에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전력을 다 해야 하는 묘한 처지에 놓입니다.

 

모삼과 무즈산 못잖게 L 역시 비현실적인 캐릭터이긴 합니다. 그는 희생자를 1,000여 조각으로 토막낸 뒤 전시하듯 늘어놓는 상상불허의 연쇄살인마입니다. 한 번도 그 실체가 등장하진 않지만 그는 단순한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모삼과 무즈산을 능가하는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의 메시지를 분석해보면 잔혹한 연쇄살인마의 면모 외에 인문학적 지성과 섬세한 감수성까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여대생인 희생자들이 순순히 그에게 이끌렸던 것을 보면 매너와 외모를 겸비한 상남자라는 점도 어렵잖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분명 이야기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는데, 세 천재의 대결은 마치 가공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판타지의 느낌마저 풍깁니다.

 

세 천재의 악연을 먼저 소개한 작가는 이어 L이 낸 문제를 모삼과 무즈산이 해결하는 개별 에피소드를 연작 단편으로 구성합니다. 거대한 물통 속에 잠긴 채 썩어가는 여러 구의 시체들, 새로 인테리어 한 집에서 나타나는 기현상과 귀신들,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목 졸린 연쇄 희생자 등 모삼과 무즈산 앞에 떨어진 L의 문제는 예외 없이 기이한 사건들입니다. 일반적인 상식과 경험만으로는 결코 풀 수 없는 미스터리들이지만, 모삼과 무즈산은 탁월한 추리 능력과 지식을 기반으로 L의 난제들을 헤쳐나갑니다.

문제는 과연 언제까지 L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느냐,입니다. 특히 모삼에겐 약혼녀를 살해하고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힌 L은 반드시 복수해야 할 적입니다. 무즈산 역시 절친인 모삼의 입장을 알기에 L의 체포를 최고의 과제로 여깁니다. 하지만 얼굴도, 이름도, 그 어떤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L에게 모든 것이 노출된 두 사람은 당분간은 L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모삼과 무즈산이 L과 벌이는 맞대결은 후속작에서나 볼 수 있겠지만, ‘사신의 술래잡기는 연작 단편 하나하나의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맛이 나는 작품입니다.

 

워낙 천재들의 대결이다 보니 간혹 모호하거나 작위적인 대목이 보이기도 하고, 세 천재의 재능을 강조하기 위해 사족 같은 설명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또 때론 신인작가의 미숙함이 드러나는 문장들도 발견되곤 하는데, 어지간한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별로 놀라지 않을 발견과 추리를 조연들의 리액션을 통해 마치 대단한 것처럼 강조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가 이 작품을 위해 얼마나 방대한 자료조사와 스터디를 했는지도 곳곳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비범한 세 천재를 그리려면 작가부터 천재에 가까운 지식을 갖춰야 했을 테니 당연히 필요한 노력일 수밖에 없겠지만, 이 작가가 후속작에서 또 어떤 기발한 결과물을 보여줄지 기대하게 하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독자에 따라 L의 범행 수법을 읽으며 굉장히 불편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테스 게리첸의 의사 3부작이후 이렇게 끔찍한 묘사를 본 적이 없었는데, 세밀하게 긴 분량으로 서술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초반에 그런 묘사가 등장해서 그 자리에서 거부감을 느낄 독자도 있겠지만, 이 작품 전체가 그런 톤으로 전개되진 않으니 거북해도 꼭 견디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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