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평점 :
출판사 ‘푸른숲’이 길리언 플린 이후 최고의 이야기꾼을 발굴한 것 같네요.
올해 읽은 장르물 가운데 단연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작가의 필력이 정말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주인공 릴리 킨트너는 ‘살인’에 관해 이런 철학을 갖고 있는 20대 후반의 여성입니다.
“살인을 죄악시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남겨진 사람들 때문이다. 죽은 이를 사랑하는 사람들.
하지만 만약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더구나 권력을 남용하고 자신을 향한 상대의 사랑을 남용하는 사람이었다면?”
이 자문에 대한 릴리의 대답은 “그들은 죽여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그녀는 “이 세상에는 생명이 너무 많으며, 살인은 비도덕적인 일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13살 때부터 자신의 철학대로 삶을 꾸려왔습니다.
여러 화자들의 1인칭 시점 서술이 번갈아 한 챕터씩 전개됩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죽이는 릴리,
불륜에 빠진 아내를 죽이고 싶어 하는 테드,
사랑 따윈 애초에 없었던, 그저 돈에 눈이 멀어 결혼을 감행한 미란다 등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화려한 전과도, 무시무시한 문신도, 밑바닥의 삶을 살던 이력도 없는데다
지극히 평범하고 적어도 중류 계층 이상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욕망과 집착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캐릭터들입니다.
그런 캐릭터 탓에 지극히 단순명료한 이유로 상대를 죽이겠다고 결심합니다.
나를 배신했으므로, 나를 아프게 했으므로, 너의 것을 갖고 싶으니까...
작가는 그들의 분노나 탐욕을 절대 과대포장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하게 묘사합니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묘사 덕분에 연이은 살인행각이 더욱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진정한 소시오패스란 요란하게 피범벅이 된 채 토막 살인을 저지르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에 따라 조용하고 깔끔하게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죽이는 자’가 아닐까요?
경찰의 추적은 두렵지만, 죄책감이라곤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 말이죠...
살인자의 행위를 변호하는 듯한 뉘앙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살인자를 응원하게끔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실제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 장면에서는 쾌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읽는 내내 어떤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 너무 궁금해지게 됩니다.
아무리 감정이입이 된 주인공이라 한들 살인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지만
솔직한 심정은 ‘제발 잡히지 말았으면..’ 하는 쪽으로 확실히 기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벌을 피하는 해피엔딩도 찜찜하고, 그 반대도 찜찜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정말 얄미울 정도로 이 두 가지 감정을 갖고 독자를 희롱합니다.
400여 페이지를 달리는 동안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함정을 만들어놓곤
주인공은 물론 독자마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위험한 롤러코스터에 태웁니다.
그리곤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 페이지의 단 몇 줄을 통해서까지 기어이 뒤통수를 때립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탄식을 터뜨린 독자라면, 혹은 멍 때리는 경험을 하게 된 독자라면
반드시 번역하신 노진선 님의 후기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진짜 반전은 어쩌면 거기에서 터질지도 모르니까요.^^)
사실 너무 노골적인 제목 때문에 읽기를 주저했던 작품이었지만
(개성 없이 기성품에서 고른 듯한 표지도 한몫 했구요)
결과적으론, 이야기와 캐릭터, 구성과 반전 등 모든 면에서
별 5개가 모자랄 정도로 만족스런 책읽기를 전해준 작품으로 기억하게 됐습니다.
이 작품이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이어지는 작품에서도 독자를 마음껏 희롱하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