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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의 사각 1 ㅣ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3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문신살인사건’과 ‘파계재판’에 이어 만난 다카기 아키미쓰의 작품입니다.
그의 집필 시기가 일본의 패전 직후부터 1960년대에 이르다 보니
정서적으로 낯설고 어딘가 날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을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아날로그 풍의 시대극을 읽는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대낮의 사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천재적인 경제 사기범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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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루오카 시치로를 비롯 도쿄대 재학생 4명은 패전 직후의 경제적 혼돈 속에서
실현 불가능한 부를 손아귀에 넣고자 사금융회사를 차립니다.
애초 리더였던 스미다가 지나친 천재성과 이기적 리더쉽으로 막장으로 치닫는 것은 물론
주색에 빠져 판단력이 흐려지자 쓰루오카는 독립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사기행각에 나섭니다.
완벽한 작전 계획, 적절한 먹잇감 확보, 거침없는 실행능력을 앞세운 쓰루오카는
기업, 은행, 외국공사관 등을 상대로 무패의 사기극을 벌입니다.
경찰과 검찰은 번번이 쓰루오카에게 무릎을 꿇고, 야쿠자마저 그의 언변에 말려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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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디지털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쓰루오카의 사기극은 오히려 애교에 가깝습니다.
전략과 전술은 아날로그적이며, 그의 진짜 무기는 상대를 휘어잡는 심리전일 뿐입니다.
상대는 항상 어수룩하거나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하는 위기에 빠져있고,
쓰루오카가 만들어놓은 무대 위에서 그의 각본대로 움직여주기 바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초점은 ‘얼마나 치밀하고 완벽한 사기극을 벌였는가?’가 아니라,
패전 직후의 혼란, 즉 경제적 가치관은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고,
법은 사방에 허점과 사각지대를 노출한 상태에서
채 서른도 안 된 젊은이들이 추구했던 탐욕과 그들 나름의 ‘정의’에 맞춰져 있습니다.
쓰루오카에겐 남의 돈을 부당하게 빼앗는다는 죄책감도 없고,
딱히 그 돈으로 뭘 하겠다는 목표도 없습니다.
오히려 힘 있는 자들을 위한 법을 혐오하며, 자신 역시 힘으로 법을 짓밟겠다고 공언합니다.
또한 성공한 재벌에겐 누구도 축재 과정의 악행을 비난하지 않는다며 자신을 정당화 합니다.
부도 직전의 회사를 상대로 거액의 사기를 벌이면서도 연민 따위는 느끼지 않습니다.
피해를 당한 회사의 간부가 자살을 해도 그다지 동요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사기에 관한 한 타고난 사이코패스라고 할까요?
쓰루오카가 처음부터 사이코패스였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초대 리더였던 스미다의 ‘일그러진 천재의 폭주’를 비난했던 쓰루오카였지만,
그로부터 독립한 후 연이어 사기에 성공하면서
쓰루오카는 어느새 스미다의 일그러진 면모를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반성 대신 ‘이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런 쓰루오카의 진화를 작가는 개인의 문제와 함께 사회의 책임으로도 묘사합니다.
그래서 수시로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설명을 부연하곤 합니다.
물론 그런 설명이 결코 쓰루오카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시대가 어떻게 비정상적인 천재를 폭주시키는지를
작가는 쓰루오카 본인을 비롯한 주변 인물과 상황들을 통해 강조하는 것입니다.
‘대낮의 사각’의 주인공은 쓰루오카지만
사실 주변 인물들의 역할 역시 분량이나 재미 면에서 만만치 않습니다.
거짓말과 배신, 사랑과 증오가 난무하고 비극적인 죽음들이 쓰루오카를 둘러싸게 됩니다.
어쩌면 쓰루오카의 사기극보다 그의 폭주 속에 개입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가
더욱 독자의 관심을 끌지도 모를 일입니다.
주간지에 연재됐던 작품을 편집하다 보니 2권으로 된 적잖은 분량이 됐지만,
웬만한 책 한 권 정도와 비슷한 시간이면 충분히 완독할 수 있습니다.
가끔 반복되는 사기행각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다카기 아키미쓰의 팬이라면 전작들에 비해 재미 면에서 소소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앞서 말한대로 사건 자체보다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면 꽤 재미있는 책읽기가 돼줄 것입니다.
사족으로..
이 작품에서 여성에 대해 비하하는 대목들이 상당 부분 나오는데,
남자인 제가 봐도 지나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점은 다카기 아키미쓰의 작품에서 매번 느끼는 점인데,
그 때문인지 출판사에서 작품 서두에 이런 문구를 미리 실어놓았습니다.
“이 작품에는 오늘날 인권 보호 견지에 비추어 부적합한 어구나 표현이 있습니다만,
작품 발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문학성을 고려하여 원문대로 살려두었음을 밝힙니다.”
‘부적합한 어구나 표현’이 꽤 많은 편인 작품이지만
그 점 때문에 작품 자체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문구입니다.
저 역시 충분히 공감하며, 혹 일부러 요즘 정서에 맞춰 번역됐더라면
오히려 당시의 시대상이나 성적 차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