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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가 사는 저택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2
황태환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10월
평점 :
선천성 왜소증 환자인 성국은 좀비로 인해 세상이 멸망한 뒤
자신이 근무하던 병원 건물에 갇힌 채 1년째 힘겹게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사방이 좀비에게 둘러싸인 상태에서 무엇보다 식량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어느 날, 추락한 구조 헬기의 생존자들이 병원 건물로 들어오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좀비보다 더욱 큰 위기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목숨을 빚졌으면서도 사람들은 작은 체구의 성국을 무시하고 깔보지만
이내 그가 식량의 루트인 좁은 통로를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란 걸 파악하곤
그에게 모든 권력을 넘겨주고 복종하게 된다.
하지만 점차 ‘먹는 입’이 늘어 가고, 생존자들의 갈등이 원시적인 폭력으로 발현되면서
식량을 움켜쥐고 있던 성국의 권력은 위태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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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를 소재로 한 작품이지만, 좀비 자체보다는 위기에 처한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민낯,
즉 공포에 잠식당한 상태에서 권력과 폭력, 배신과 거짓말로 자신만의 생존을 갈구하는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본능의 밑바닥을 그린 작품입니다.
물론 병원 건물에 갇힌 인물들을 공포와 위기로 몰아넣은 외부의 적은 좀비였고,
좀비를 상대로 한 처절한 싸움이 간간이 그려지긴 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문제는 식량을 구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좀비에게 먹히기 전에 굶어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먹는 문제’가 인간을 본능의 수준에서 서로 투쟁하도록 부추겼던 것입니다.
주인공인 성국은 왜소한 체구 때문에 세상이 멸망하기 전이나 현재나
주위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는 인물입니다.
그 덕분에 소심하고 내향적인 인물이었던 그는 선의로 많은 사람들을 구해주지만
막상 좀비의 이빨에서 벗어난 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성국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은 체구 덕분에 유일하게 식량을 구해올 수 있는 인물로 판명나자
사람들은 성국 앞에 무릎 꿇게 되고, 그는 일약 권력자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권력은 수시로 요동치면서 성국에게 안락함과 위기를 번갈아 전해주곤 합니다.
처음엔 왜 주인공 성국을 굳이 왜소증 환자로 설정했는가, 싶었는데
작가는 여러 국면을 통해 성국의 왜소증을 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왜소증은 성국의 심신을 피폐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유일한 생존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또 소심하고 내향적이던 그가 식량을 매개로 권력을 쥔 뒤
복수심에 사로잡힌 캐릭터로 변해가는 과정 역시 왜소증 덕분에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그가 상대하는 인물들은 모델처럼 잘 빠진 바람둥이, 신체 건장한 군인,
자기 살 길만 모색하는 엘리트, 간호사였던 미녀 등 왜소증과는 대척점에 선 인물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성국이 복수심에 사로잡힌 지독한 이기주의자로 변모하는 과정은
통쾌하면서도 때론 애틋한 마음까지 갖게 만들곤 합니다.
영상이든 문학이든 좀비라는 소재와 별로 친하지 않은 취향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와 반전을 통해 인간의 민낯을 그린 매력적인 설정 덕분에
(분량도 길지 않아서) 책을 편 뒤 한 번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약간은 거칠고 투박한 문장들이 자주 목격된다는 점입니다.
성국이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은 때론 너무 쉽고 안이하게 처리되고,
일부 인물의 캐릭터가 변하는 장면 역시 개연성이 부족한 경우가 종종 보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뼈대만 있고 살집은 허약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을 보면
작가의 ‘문학적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매력적인 소재와 뛰어난 구성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의 깊이는 얕고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영상화의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좀비에게 둘러싸인 채 폐허가 된 병원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여러 인물이 본능에 따라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듯한 설정은
비주얼 면에서 꽤나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영화 ‘부산행’의 성공을 비춰보면
조만간 이 작품의 영상화 소식이 들려올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