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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4월
평점 :
이 작품이 전미 7대 미스터리 상을 석권했다는 출판사의 소개글을 봤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왠지 ‘장르물로 분류되는 것이 맞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 사람의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 밑바탕에 깔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13세 소년의 성장기를 주축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한 공동체의 이야기이며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추천글처럼 ‘분노와 죄책감, 구원에 관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단순히 장르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접근했다면 조금은 낭패감을 느낄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 낭패감을 견뎌낸다면 의외로 묵직한 여운과 잔잔한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Ordinary Grace’입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서 잘 몰랐다가 나중에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됐는데)
쉽게 말하자면 일반적인 하느님의 은총, 즉 평온함과 따뜻함을 내포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 속의 인물들, 관계들, 사건들은 결코 평온하고 따뜻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몸과 마음 어딘가 한군데 이상은 심하게 망가져있습니다.
그들의 관계 역시 겉과 속이 다르거나 애증이 교차하거나 대놓고 민낯으로 부딪히곤 합니다.
여러 죽음이 얽힌 사건들은 참혹하거나 의문투성이입니다.
주인공인 13세 소년 프랭크와 두 살 아래 동생인 제이크는
불온하거나 불안정한 1961년의 미네소타 주의 뉴 브레멘이라는 소도시에서 성장하면서
수많은 인물과 관계와 사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현실에서든 소설을 통해서든) 남의 불행을 지켜보는 일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지만
두 소년의 성장통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지난한 길을 걷습니다.
하지만 두 소년의 아버지이자 독실한 목사인 네이선 드럼은
그리스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를 인용하며 성장통을 겪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배움에는 고통이 따른다. (중략) 절망 속에서, 신의 잔인한 은총을 통해 지혜가 찾아온다.”
이때의 잔인한 은총을 Awful Grace라고 한다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사고, 불행 등을 통해 깨우침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란 뜻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의 원제 ‘Ordinary Grace’는 극단적으로 역설적인 제목입니다.
들끓는 호기심, 왕성한 사춘기적 욕구, 근거 없는 정의감으로 폭발 직전인 두 소년에게
아버지 네이선은 ‘잔인한 은총’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지혜를 얻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두 소년은 때론 분노하고, 때론 겁내고, 때론 무모하게 덤비면서도
‘잔인한 은총’을 통해 얻은 지혜를 거름삼아 자신들만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완성해나갑니다.
20세기 초중반의 혼돈스런 미국 사회를 그린 작품들이 그러하듯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무겁고 폭풍전야 같은 음울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소도시 뉴 브레멘과 프랭크 형제에게 닥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적잖은 분량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긴장감 있게 전개됩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수많은 조연들은 이야기를 촘촘하고 맛깔나게 만든 주역들이기도 합니다.
문장은 고급스럽지만 현학적이지 않고, 깊지만 난해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이 작품을 장르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서는 100% 공감 못하지만,
어쨌든 이 작품이 거둔 대중적 성과(전미 7대 미스터리 상 석권)가 공수표가 아님은
확실히 보증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