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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죽이기 ㅣ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평점 :
꿈속에서 본 살인사건이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된다면?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연쇄살인처럼 계속 이어진다면?
더구나 자신이 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게 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진범을 찾지 못할 경우 꿈과 현실 모두에서 목숨을 잃을 상황에 처한다면?
그야말로 초난감한 상황입니다.
그나마 꿈속의 인물들이 현실에서도 그 모습 그대로 나와 준다면 금세 진범을 찾겠지만,
만일 꿈속의 인물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캐릭터들이라면 문제는 정말 심각해지겠죠.
대학원생 아리는 자신의 꿈속에서 앨리스로 등장합니다.
꿈속에서 연쇄살인범으로 몰린 앨리스는 현실에서도 똑같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마침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이모리(꿈속의 ‘도마뱀 빌’)의 도움을 받게 된 아리(앨리스)는
꿈과 현실 두 세계를 오가며 진범 찾기에 나섭니다.
하지만 꿈에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이 현실 속의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캐릭터 그대로 괴팍하거나 엉뚱하거나 4차원을 헤매고 있어서
도저히 현실 속의 누구인지 판명해낼 수가 없습니다.
아리는 이모리와 함께 사건 관련자들을 하나씩 체크하며 꿈과 현실의 캐릭터들을 맞춰봅니다.
그와 동시에 정해진 시간 안에 꿈과 현실을 오가며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려 합니다.
엄청난 상상력과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구성이 필요한 이런 스토리를
작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언어유희와 캐릭터 플레이를 통해
맛깔나게 풀어냅니다. (때론 복잡하고 어지럽기도 하지만요..^^)
얄미울 정도로 냉소적이다가도 한편의 재미난 만담처럼 급변하는 꿈속의 분위기와
정해진 시간 안에 연쇄살인의 진범을 찾아내야만 하는 긴장감 넘치는 현실의 분위기가
적절한 타이밍마다 챕터를 바꿔가며 독자의 마음을 휘어잡습니다.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아주 오래 전 동화 버전으로 읽은 기억밖에 없어서
‘앨리스 죽이기’를 읽기 전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론 굳이 재독 없이도 술술 읽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캐릭터와 사건들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면
‘앨리스 죽이기’ 역시 좀더 재미있게 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특유의 언어유희가 때론 말장난 같아서 약간의 짜증을 유발하기도 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구성의 무리수가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판타지가 끼어든 미스터리를 싫어하는 독자들에겐 쉽게 읽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외의 간식’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접한다면
이런 재미를 맛보기가 쉽지 않다는 ‘의외의 만족’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