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케어
하마나카 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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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명의 노인을 살해한 <>4년의 재판 끝에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희대의 연쇄살인마임에도 불구하고 법정 안팎의 분위기는 사뭇 특이합니다.

<>에게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 중 일부는, 아니, 대다수는 <>를 증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 살인을 구원으로 받아들이는 유가족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4년 전으로 돌아가, <>가 오랜 기간에 걸쳐 저지른 연쇄살인,

일명 로스트 케어 사건의 전말을 여러 인물의 시각을 통해 세세히 묘사합니다.

<>는 과연 무기력한 노인들을 상대로 살인을 즐긴 사이코패스였는가?

<>가 수십 명의 노인을 살해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를 기소한 검사도, <>에게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도 <>를 증오하지 않는가?

 

● ● ●

 

수십억의 돈으로 고급 실버타운에서 극진한 서비스를 받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자식의 전 재산을 탕진시키고도 병과 노화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인이 있습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 부모를 안전지대에 모셔놓곤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병들고 치매에 걸린 부모를 돌보는 하루하루가 지옥 그 자체인 자식이 있습니다.

국가는 오래 전부터 이런 상황을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별 쓸모없는 시스템을 만들기만 했을 뿐 참담한 현실은 개인의 문제로 떠넘겨왔습니다.

병든 부모를 모시는 일이 더 이상 미풍양속이 아닌 고통스런 참극이 된 현실에서

<>는 죽음을 통해 부모와 자식 양쪽을 모두 구원하는 길에 나섭니다.

과연 누가 <>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번역자인 권일영 님은 이 소설을 옮기며 전체적으로 느낀 것은 절망입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생로병사 현상이 이 참극의 배경이라는 점,

, 누구나 가해자도 될 수 있고, ‘피해자도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지금은 병든 부모 때문에 고통 받는 자식의 입장이지만,

언젠가는 스스로가 자식에게 고통을 줄 병든 부모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공포에 가까운 절망감 그 자체란 뜻입니다.

 

과거와 달리 현대는 장수(長壽)가 더 이상 축하할 일도, 축하받을 일도 아닌 세상입니다.

초고령사회의 부작용은 장수 선진국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낯익은 현상입니다.

로스트 케어는 그런 부작용 가운데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비극을 그립니다.

 

로스트 케어는 노인 연쇄살인을 다룬 미스터리이면서

동시에 정면으로 초고령사회의 문제를 제기하는 다큐멘터리의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앞서 발간된 침묵의 절규를 통해 초호황기와 버블시대, 동일본 대지진 등을 거치며

불행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삶을 살았던 한 여자의 일생을 비판적으로 그렸던 작가답게

하마나카 아키는 로스트 케어를 통해 일본 사회의 또 다른 그늘진 단면을 진단합니다.

 

이야기의 큰 얼개를 초반부터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나

약간은 목적극의 냄새가 풍기는 점, 또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인공적인 캐릭터의 설정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긴 합니다.

때문에 침묵의 절규에 비해 미스터리의 밀도나 반전의 충격은 느슨한 것은 사실이지만,

피부에 와 닿는 리얼리티만큼은 압도적인 작품임에 분명합니다.

지금 당장 <>가 현실에 나타난다고 해도 전혀 놀랄 것 같지 않을 정도로

하마나카 아키가 그려낸 지옥은 생생하고 사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족으로..

비슷한 소재지만 좀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픽션을 읽고 싶은 독자라면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2030년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초고령사회의 문제를 파격적으로 그린

소네 케이스케의 결국에...’ (단편집 열대야에 수록)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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