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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맨의 재즈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4
레이 셀레스틴 지음, 김은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1919년 5월, 본격적인 여름을 앞둔 뉴올리언스에서 참혹한 도끼 연쇄살인이 벌어집니다.
희생자들이 이탈리아 마피아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탓에
사건을 맡은 형사 마이클 탤벗은 유력 마피아 가문인 마트랑가 일가를 주목합니다.
또한 수년 전 마이클의 밀고로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모범수로 석방된 전직 형사 루카는
마트랑가 가문의 협박에 가까운 요청으로 본의 아니게 진범 찾기에 나서게 됩니다.
한편, 혼혈에 여성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탐정이 되고 싶은 꿈을 억눌렸던 아이다 데이비스는
우연히 도끼 살인마에 관한 정보를 접하곤 친구 루이스와 함께 위험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마이클-루카-아이다는 거의 접점 없이 각자의 방향대로 수사를 진행하지만
진실을 향한 그들의 노력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점차 한곳으로 수렴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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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부터 1919년에 걸쳐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났던 실제 도끼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대하급 스릴러이자 당시의 뉴올리언스를 생생하게 그려낸 역사소설이기도 한 작품입니다.
현실에서는 영국의 잭 더 리퍼처럼 뉴올리언스의 도끼 살인마 역시 미제 사건으로 남았지만,
작가는 팩트와 픽션을 절묘하게 뒤섞은 것은 물론 뛰어난 캐릭터 플레이를 통해
묵직하면서도 재미와 긴장감을 놓치지 않은 수작을 만들어냈습니다.
스토리나 캐릭터 등 작품 속의 모든 극적 요소들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디테일까지 생생하게 묘사된 ‘1919년의 뉴올리언스’라는 배경 덕분입니다.
미국이지만 미국 같지 않은 도시, 흑백은 물론 혼혈과 이민자까지 가세한 팽팽한 인종 갈등,
마피아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자 재즈의 흥이 골목골목까지 만연한 곳,
만성화된 부패와 은밀한 폭력이 판을 치고 이제 곧 금주법 시행을 목전에 둔 불안정한 거리,
거기에 거대한 태풍과 불벼락 같은 혹서가 번갈아 도시를 휘갈기는 잔인한 자연환경 등
말 그대로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화약고 같은 뉴올리언스라는 무대는
도끼 살인마의 공포를 극대화시키기에 제격인 곳입니다.
그에 덧붙여 이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뛰어든 세 명의 주인공 역시
뉴올리언스라는 배경의 영향을 톡톡히 받은 것으로 설정돼있습니다.
마이클은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자신의 멘토 경찰 루카를 고발한데다
당시 뉴올리언스에서는 불법이었던 ‘흑인 아내와 자식들’이 있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합니다.
온 도시가 “흑인이 범인”이라고 주장하지만 마이클은 거꾸로 백인 마피아에 주목합니다.
루카는 석방 후 뉴올리언스에 대한 미련을 접고 고향인 이탈리아로 돌아가려 하지만
한때 자신을 후원했던 유력 마피아에게 발목을 잡혀 사건에 휘말리고 맙니다.
뉴올리언스는 유능한 형사이자 향수병에 사로잡힌 루카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흑백 혼혈인데다 여성이라는, 당시로서는 약자 중의 약자인 아이다 데이비스는
자신의 핸디캡을 이겨내고 셜록 홈즈의 마니아답게 명탐정이 되려는 꿈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인종차별이 극심한 뉴올리언스는 그런 그녀를 쉽게 받아들여주지 않습니다.
경로는 달라도 세 주인공이 치명적인 위기를 수차례 넘기면서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은
뉴올리언스의 5월의 끈끈한 공기나 느릿한 재즈의 리듬을 닮았습니다.
속도 빠른 현대의 미국식 스릴러와는 전혀 다른 전개를 보이고 있어서
그런 ‘맛’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조금은 만연체 같은 지루함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초중반까지 이어지는 뉴올리언스의 분위기나 재즈에 대한 디테일하고 친절한 설명은
정통 연쇄살인마 이야기를 기대한 성미 급한 독자에겐 쉽게 읽히지 않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늦추고,
완벽할 정도로 앞뒤가 잘 맞아 떨어지는 깔끔한 스토리에 대한 미련을 조금만 버린다면,
또, “누가 진범이냐?”보다 주인공들의 기구한 삶과 뉴올리언스의 특별한 정서에 집중한다면,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의외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큰 여운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작품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도시 전체를 궤멸시킨 태풍 카트리나로만 기억됐던 재즈의 고향의 100여 년 전의 과거,
또, 본문의 표현대로 “폭력적이고 용서가 없고 서로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의심을 놓지 않는
범죄자와 이민 사회가 넘쳐나는 곳. 하지만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눈부시게 빛나는
엄청난 매력을 가진 곳이기도” 한 뉴올리언스의 1919년 産 속살을 맛보기 위해
이만한 텍스트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