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 죽은 자의 일기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9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인시()의 유력한 차기 시장 후보인 강호성의 집에서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교살당한 그의 어머니와 투신자살한 그의 아내 주미란이 그들입니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데다 여당의 스타정치인인 강호성의 신분 때문에

경찰은 말기암이던 주미란이 남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결론짓고 서둘러 수사를 종결하려 합니다.

하지만 형사팀장 서동현은 곳곳에서 감지되는 위화감 때문에 단독수사를 강행합니다.

정치권과 상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주미란의 행적을 집요하게 탐문하던 서동현은

강호성의 치부와 추악한 비밀, 그에 대한 악의로 가득 찬 주미란의 일기장을 발견하지만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의 압력으로 인해 정의를 구현할 기회는 오히려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

 

● ● ●

 

더블로 처음 만났던 정해연 작가의 신작입니다.

독특한 구성과 캐릭터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던 더블에 비해

악의는 거의 돌직구 스타일의 정통 미스터리에 가깝습니다.

파헤칠수록 수상쩍은 거물 정치인의 당일 행적과 평소 사생활,

의문투성이인 사건 현장, 뭔가 진실을 알고 있는 듯한 가정부의 묘한 태도,

그리고 거대 악에 맞서 무모한 전쟁을 펼치는 중년의 형사팀장의 분투 등

이야기와 캐릭터는 전형적인 형사물 공식대로 설정돼있습니다.

 

이야기는 세 가지 시점에서 전개되는데, 수사를 진행하는 형사팀장 서동현의 시점이 메인이고

그의 수사를 방해하며 진실을 은폐하려는 강호성의 시점,

그리고 일기를 통해 남편에 대한 악의를 폭로하는 죽은주미란의 시점이 그것입니다.

말하자면 진실을 파헤치는 쪽과 그것을 묻으려는 쪽이 맞대결을 펴는 가운데,

죽은 자의 일기가 진짜 진실의 편린들을 조금씩 흘려가는 구도입니다.

범인은 초반에 공개되지만 이런 구성 덕분에 이야기는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경찰과 언론을 쥐락펴락하는 거물 정치인의 폭주와 추악함은 독자들을 열 받게 만들고

그런 거물을 상대하는 일개(?) 형사팀장의 분투는 애처로워 보일 정도라

어떤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 무척이나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일방적이고 도식적인 정의의 승리만을 풀어놓진 않습니다.

때론 권력은 현실이고 정의는 이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강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사회파 미스터리의 냄새가 물씬 풍기곤 하는데

엔딩을 보면 그런 점을 감안한 작가의 의도가 확실히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

 

전작인 더블에서 느낀 아쉬움들 - 내공이 부족한 문장과 캐릭터 등 아마추어적인 풋풋함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악의는 안정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안정적인 만큼 더블에서 보여줬던 신선함이나 도전적인 패기는 사라졌습니다.

이야기는 공식대로 흘러가고,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캐릭터는 공식에 맞춰 의도적으로 과대포장되기도 하고

(특히 사악한데다 무한권력을 휘두르는 강호성 캐릭터는 좀처럼 이입이 어려운 경우였습니다.)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한 무리한 해프닝과 설정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리얼리티가 현저히 떨어지는 지점도 있습니다.

마지막에 드러난 악을 응징하기 위한 트릭은 가볍고 어설퍼 보였고

어딘가 멋부린 듯한 엔딩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독자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단선적인 사건에 풍성함을 얹기 위해 여러 인물과 장치들이 동원됐지만

결과적으론 그것들이 조화롭게 믹스됐다고는 보기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평하자면 기대에는 조금은 못 미친 작품이었지만,

풋풋하지만 새롭고 독특했던 더블과 안정적이지만 상투적인 악의를 거쳤으니

이젠 두 작품의 미덕만 고루 갖춘 정해연 작가의 후속작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