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위원회 모중석 스릴러 클럽 20
그렉 허위츠 지음, 김진석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특수부대 출신의 LA 연방법원 부집행관 티모시 랙클리(이하 팀)7살 된 딸 지니를 잃은 후

윌리엄 라이너 교수가 이끄는 소위 위원회에 초대받습니다.

전직 폭약전문가, 전직 FBI 과학수사원, 전직 경찰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재판기록과 수사 자료를 토대로 회의를 거쳐 유죄라고 판단된 범죄자를 처단합니다.

팀은 이런 방식의 사적인 복수에 대해 회의와 갈등을 겪지만 딸 지니를 살해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법과 제도의 허점을 통해 유유히 빠져나간 범인을 응징하기 위해

위원회의 사형집행인 역할을 수락합니다.

실제로 처단은 집행되고 LA 시민들의 열광과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팀은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위원회의 태도,

일부 멤버들의 광기에 서린 복수심 등으로 인해 점점 위원회의 방식에 회의를 갖게 됩니다.

결국 위원회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팀은 오히려 경찰에 쫓기는 처지에 이르고 맙니다.

 

● ● ●

 

법망을 빠져나간 범죄자에 대한 개인의 복수는 장르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재입니다.

철저히 개인의 힘으로 복수하는 경우도 있고, 교차살인이라는 방식도 종종 봤지만

가족을 잃은 비슷한 상처를 지닌 출중한 능력자들이 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직적으로 범죄자를 처단한다는 형식은 제 기억으론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배심원이 되어 범죄자의 재판 기록과 수사 자료를 토대로 판정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보통 자경단은 법 테두리 밖에 있지만 자신들은 법과 함께 한다.”,

법의 갈라진 틈을 메우는 모르타르 역할을 자청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참혹하게 딸을 잃은 팀의 입장에서 이들의 룰은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복수를 다룬 이야기들이 대체로 그렇듯

주인공 팀은 전지전능함을 표방하며 사형을 집행하는 위원회의 방식에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위원회가 유죄를 선언한 범죄자의 눈빛 속에서 진정한 참회를 엿보거나

살인을 위한 살인을 저지르는 광기에 사로잡힌 멤버들을 지켜보면서

팀은 정의란 무엇인가?’ 또는 정당한 살인이란 존재하는가?’라는 정답 없는 화두와 함께

깊은 갈등에 빠지고 맙니다.

 

어쩌면 제대로 된 개인의 복수를 맛보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겐 아쉬운 대목일 수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이나 시즈쿠이 슈스케의 검찰 측 죄인

개인의 복수를 다룬 작품들은 심정은 이해하나 당신의 행동은 잘못이라는 판정을 내리거나

잘 해야 오픈된 결말로 이야기를 끝맺곤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말 속이 시원한 개인의 복수 이야기를 선호하는 취향 때문인지

사회적 규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엔딩을 보면 아쉬움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구로타케 요의 그리고 숙청의 문을은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준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위원회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수많은 캐릭터들의 외양과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의 뛰어난 필력 때문입니다.

자식을 잃은 대다수의 부부들처럼 갈등과 화해, 상처주기를 반복하는

팀과 그의 아내 드레이의 모습은 절절할 정도로 공감을 느끼게 합니다.

제각각 나름의 정의를 간직한 위원회 멤버들 하나하나의 고통과 상처, 복수심에 대한 묘사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한 사실감 있는 설정과 문장들 덕분에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리얼리티를 만끽하게 해줍니다.

덧붙여 긴장감과 밀도를 지닌 액션 스릴러로서의 미덕까지 잘 배합한 덕분에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도중에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반전은 어느 정도 예상한대로 전개되고, 엔딩은 어정쩡한 타협으로 포장됐지만

개인의 복수라는 결코 쉽지 않은 주제를 작가는 나름의 방식으로 잘 끌어나갔습니다.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동시에 할리우드 액션물의 재미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라

두 가지 맛을 함께 맛보고 싶은 독자들에겐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