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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숲 ㅣ 블랙 캣(Black Cat) 23
타나 프렌치 지음, 조한나 옮김 / 영림카디널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1984년 여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노크나리의 숲에서 3명의 소년, 소녀가 실종됩니다. 수색 끝에 애덤 라이언은 피범벅이 된 채 발견됐지만, 나머지 2명은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20년 후인 현재, 애덤은 로브 라이언으로 개명한 뒤 살인사건 전담반 형사가 돼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악몽의 근원지로 남아있는 노크나리의 숲 유적 발굴현장에서 참혹한 사체로 발견된 12살 소녀 케이트 살인사건을 맡게 됩니다. 새로 살인사건 전담반에 배치된 여형사 캐시, 국회의원 삼촌을 둔 동료형사 샘 오닐이 로브의 파트너로 수사에 참여하고, 대규모 지원반이 구성되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집니다.
아일랜드 출신 타나 프렌치의 데뷔작이자 2008년 굵직한 미스터리 신인상을 휩쓴 작품입니다. 20년의 시차를 두고 노크나리 숲에서 벌어진 실종사건과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지만 단순히 ‘범인 찾기’ 이상의 서사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숲에서 두 친구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로브는 아직도 그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케이트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노크나리 숲을 다시 찾은 로브는 조각조각 되살아나는 유년기의 기억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합니다. 더구나 되살아난 기억 가운데 케이트 살인사건과 교차되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로브는 20년의 시차를 둔 연쇄살인범의 가능성까지 고려하게 됩니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사라진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등 로브가 겪는 심리적 고통은 미스터리에 맞먹는 분량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28살의 여형사 캐시는 이런 로브의 곁에서 뛰어난 파트너이자 ‘특별한 친구’ 역할을 하는데, 형사로서의 재능은 물론 범죄심리학에도 능한 인재입니다. (캐시는 타나 프렌치가 후속작으로 집필한 ‘The Likeness’의 주인공을 맡을 정도로 개성과 매력이 철철 넘치는 여형사입니다.) 로브와 캐시는 나란히 누워서도 그야말로 손도 안 잡고 잠만 자는 독특한 관계입니다. 막역한 동성친구처럼 서로를 편하게 대하며 허물없이 속을 털어놓을 뿐만 아니라 수사에서도 눈빛만으로 모든 것이 통할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는 파트너입니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그저 물 흐르듯 계속 좋게만 이어지진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남녀상열지사’가 개입되면서 이상전선이 흐르는가 하면, 수사상 결정적인 지점에서 큰 충돌을 겪으면서 파열음을 내기도 합니다. 친구이자 연인이자 파트너인 두 사람의 관계의 흐름도 꽤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한낮에도 햇빛이 스며들지 못하는 숲이라는 공간, 20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곳에서 벌어진 소년과 소녀를 대상으로 한 실종사건과 살인사건, 그리고 실종사건 때 홀로 살아남아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거친 소년이 20년 후 같은 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수사해야 하는 아이러니 등 ‘살인의 숲’은 소재와 캐릭터만 봐도 그 무거움이 만만치 않은 작품입니다.
타나 프렌치는 그 무거움을 무려 570페이지에 걸쳐 펼쳐놓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 느껴지는 두통과 여운이 여간 묵직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많은 서평과 작가후기에서도 지적됐듯) 독자의 마음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한 엔딩은 불편하면서도 이것저것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무거움의 결정타’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을 꼽자면 ‘분량의 문제’입니다.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무척 심플한 설정인데, 그에 비해 피로감과 지루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분량이 부풀려졌다는 생각입니다. 우선은 화자로 등장한 로브가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을 지나칠 정도로 과하게 토로했고, 또, 20년 전 친구들과의 추억에 대한 묘사를 위해서도 과한 분량이 할애됐습니다. 필요한 내용들이긴 하지만 조금만 절제했더라면, 그래서 450페이지 안팎으로 집필됐더라면 훨씬 더 몰입감도 높아지고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작가의 필력이나 캐릭터의 매력 등으로 볼 때 후속작 출간이 당연하다고 보였는데, 타나 프렌치의 작품이 ‘살인의 숲’ 이후 더 이상 출간 안 된 점은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인터넷 서점에서 품절 또는 절판 상태인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캐시가 주인공을 맡은 ‘The Likeness’만큼은 빠른 시일 안에 출간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