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보는 눈
마이클 코리타 지음, 나동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숨은 강에 이어 다시 한 번 마이클 코리타의 기발한 상상력을 맛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오늘 밤 안녕을이나 밤을 탐하다가 일반적인 스릴러로 분류된다면,

사물을 보는 것만으로 거기에 깃든 사연이나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데다

특별한 환각을 보게 되는 주인공이 등장한 숨은 강이나,

100여 년 전부터 켄터키 동부의 블레이드 릿지라는 외진 벌판에서 벌어진 기이한 현상과

그로부터 파생된 살인, 자살 등 수많은 죽음의 비밀을 쫓는 형사반장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호러와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결합된 독특한 초자연 스릴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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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찾기를 맡은 것은 형사반장 케빈 킴블과 폐간된 신문의 베테랑 기자 로이 다머스입니다.

두 사람은 어느 날 외딴 산등성이에 등대를 세워놓은 괴짜 노인 와이엇의 전화를 받습니다.

강요된 자살을 암시하며 제대로 된 조사와 발표를 부탁한 그는 결국 자살체로 발견되는데

문제는 그의 등대에서 발견된 수많은 인물사진과 지도에 표기된 이름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곧 지도 속 이름들과 사진 속 인물들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곤 충격에 빠집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살인, 자살, 사고에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 연루됐던 인물들이며,

그 사건들은 100여 년 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산발적이긴 하지만

모두 블레이드 릿지라는 등대 주변 지역에서 캄캄한 밤에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공통적으로 목격했다는 푸른 불꽃의 정체는 무엇인가?

외딴 산등성이의 등대에 적외선 조명까지 설치한 와이엇의 목적은 무엇인가?

살인자들의 공통점 치명적 사고를 당하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왜 하필 외지고 버려진 땅 블레이드 릿지가 사건의 무대인가?

킴블과 로이는 탐문과 함께 블레이드 릿지의 역사까지 파헤치면서

상식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의 진상을 파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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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키워드 하나만으로도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맥 빠지게 할 수 있는 탓에

자세한 줄거리는 물론 결정적인 사건조차 쉽게 언급하긴 어렵지만,

초자연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폭주하기에 딱 좋은 작품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혹시 그쪽 취향이 아닌 독자라도 블레이드 릿지에서 벌어진 기괴하고 특별한 사건들을 통해

충분히 매력적이고 긴장감 백배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영웅의 서사, 즉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의 경로를 따라가는 작품은 아닙니다.

오히려 작품의 배경인 블레이드 릿지 만큼이나 어둡고 음습한 톤이 작품 내내 이어지고,

주인공 킴블의 개인사, 사랑, 미션, 위기는 하나같이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초자연 스릴러라고 하지만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묘사는 극히 단순하고 간결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정말 그런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감나는 비현실감이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유령, 귀신, 환각 등 비현실적인 설정이 스릴러라는 장르와 맞닿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이클 코리타는 독자들에게 이질감을 남겨주지 않습니다.

처음엔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하면서 위화감을 느끼다가도

어느 새 블레이드 릿지를 떠돌며 수많은 죽음을 초래한 비현실적인 존재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글빨의 힘이라기보다는 빈틈없이 직조된 정교한 설계도의 힘 덕분입니다.

블레이드 릿지의 비극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다양한 캐릭터들,

100년도 훌쩍 넘은 과거 속에 묻혀있던 블레이드 릿지의 참혹한 사고들,

인간은 보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는 등대 주변 고양잇과 동물구조센터의 동물들,

그리고 사건과 사건,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어주는 비극적인 인과관계 등

마이클 코리타는 비현실적 설정이 주축이 된 방대하고 복잡한 서사를

그 어떤 사실적인 작품보다 철저하고 빈틈없이 설계했습니다.

익숙한 서사에 멋진 반전 한두 개면 나름 독자들에게 먹힐 법도 한데,

마이클 코리타는 그야말로 일부러 가시밭길을 선택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워낙 소심해서(?) 영상으로는 공포물을 잘 못 보면서도 간혹 미드 슈퍼내추럴을 보곤 했는데

그 드라마의 팬이라면 아마 블레이드 릿지의 비극에 푹 빠져들 수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슈퍼내추럴보다 조금 덜 무서울지는 몰라도,

이야기의 규모나 서사의 깊이, 비극의 무게감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슈퍼내추럴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이 정도 맛은 당연히 우러나겠지만요.^^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한 줄거리는 언급 못했는데,

이 서평만으로는 이 책을 읽어야할지 잘 모르겠다.”, 하는 분들은

인터넷 서점의 줄거리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름 스포성 내용이 있긴 하지만 알아도 무방한 정도라 괜찮습니다.

 

이 작품이 7,8월 한여름에 나왔더라면 좀더 분위기를 탔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간혹 눈에 띄는 모호한 번역들이 옥의 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국내 출간된 마이클 코리타의 네 작품이 모두 번역자가 달랐는데,

궁합이 잘 맞는 번역자가 있다면 한 분이 도맡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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