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처럼 붉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1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상처투성이 과거와 애정 없는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일부러 먼 지방으로 진학했고,

또래들의 허세와 어른 흉내에 질색하며 철저하게 투명인간처럼 살아가던 17살의 루미키.

그런 그녀가 철없는 세 친구로 인해 살인과 마약이 개입된 엄청난 사건에 휘말립니다.

누군가의 피로 물든 3만 유로를 무단으로 들고 와 제멋대로 나눠가진 현장을 목격하고 만 것.

루미키는 비밀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일은 그녀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루미키는 정체불명의 미행자에게 납치와 총격 등 무차별 공격을 받게 됩니다.

마음을 바꿔 3만 유로에 관련된 비밀을 파헤치기로 한 루미키는

차곡차곡 단서를 모으고, 역으로 미행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건에 달려듭니다.

그리고 종국엔 범죄조직의 보스가 개최한 파티에 백설공주 차림으로 잠입하기에 이릅니다.

 

● ● ●

 

동화작가, 번역가, 서평가 등의 이력을 지닌 핀란드의 작가 살라 시무카가 집필한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의 첫 편입니다.

주인공인 루미키는 핀란드어로 백설공주를 뜻하는 이름을 가진 17세 소녀입니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자기 나이의 두 배 이상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한 루미키의 심신은

웬만한 어른 이상의 내공과 파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참혹한 폭력으로 물든 유년기와 청소년기 속에서 부모는 그저 침묵과 종속을 강요했고,

루미키는 조금씩 자신의 주위에 벽을 쌓으면서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진학과 동시에 가족을 떠나 자취를 시작한 루미키는

한겨울의 얼음수영과 격투기 수련으로 몸을 단련하고

스스로 정한 엄격한 좌우명에 충실함으로써 마음을 제어하면서

투명인간으로서의 삶을 충실하게 이행해왔습니다.

 

언뜻 보면 스티그 라르손이 창조해낸 살인기계 리스베트의 청소년 버전 같지만,

루미키는 어쩔 수 없는 17세 소녀의 면모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음 속 깊이 불같은 사랑의 추억과 상처를 새겨놓았는가 하면,

자신의 좌우명 중 하나인 무난하게 살고 싶으면 참견하지 마라를 어겨가면서까지

위기에 빠진 사고뭉치 친구를 향한 연민 어린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물론 그런 여린 성격 때문에 무시무시한 범죄조직과 맞닥뜨리는 운명을 맞게 되지만요...

 

사건의 출발점부터 루미키의 행적 하나하나가 모두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정작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야기 자체의 속도감이 워낙 뛰어나서

빠른 독자는 반나절이면 완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 살짝살짝 거론되는 루미키의 불행한 과거사는

독자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는데,

작가는 정말 딱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곤

후속작 눈처럼 희다흑단처럼 검다에서 확인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루미키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17세 소녀에게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상황들,

즉 스파이 액션물 주인공조차 버거워할 만한 위기 상황을 잇달아 만나게 됩니다.

납치, 총격, 격투, 잠복, 위장 등...

물론 작가가 공들여 설정한 루미키의 캐릭터 덕분에 무난히 읽히긴 하지만

그래도 간혹 위화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등 떠밀 듯 친구를 사지로 보내놓고도

닌텐도 게임에 빠져 환호하고 있는 철없는 17살 친구들 캐릭터 때문에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루미키의 애어른다움이 위화감을 느끼게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니키타 또는 리스베트 급의 내공을 지닌 저 소녀가 정말 17살 맞아?”

 

현지 언론에선 그녀를 한 마리 늑대 같은 여주인공이라고 표현했다는데

그러기엔 루미키에게는 지워낼 수 없는 17살 소녀의 잔상이 많이 남아있는 편입니다.

두 편의 후속작에서도 여전히 17살 소녀로 등장할지, 아니면 세월이 좀 튈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루미키가 어떻게 진정한 한 마리 늑대로 성장하는지 찬찬히 지켜보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