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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분의 1의 우연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0월
평점 :
(인터넷 서점 책소개에서 인용한 줄거리입니다.)
한밤중의 도메이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6중 추돌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트럭이 전복되고
뒤따르던 차량들이 연달아 추돌하며, 6명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목숨을 잃는다.
근방에서 야경을 찍으려던 아마추어 사진가 야마가 교스케는 이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추돌한 차량에서 불길이 치솟아 어둠을 대낮처럼 밝힌 생동감 넘치는 사진은
'10만 분의 1의 우연'이 만든 셔터 찬스였다는 극찬과 함께
신문사의 사진 공모전에서 연간 최고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그 사고를 통해 약혼녀를 잃은 누마이 쇼헤이는 사고와 야마가의 사진 사이에
우연이라고만 여길 수는 없는 필연적인 인과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야마가 교스케에게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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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은 매번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이라는 표현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개인과 사회, 선과 악, 옳고 그름에 관한 논쟁거리를 남겨놓는 주제의식 때문에
출간된 지 한참이 지난 현재까지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10만분의 1의 우연’은 무척 아이러니한 제목입니다.
아무리 촉이 뛰어난 보도사진작가라 하더라도
언제쯤, 어느 곳에서 ‘끝내주는’ 대형사고가 일어날 것을 예상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10만, 아니 100만 분의 1이라는 확률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약혼자를 잃은 누마이 쇼헤이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 여기게 됩니다.
누마이는 사고 현장을 답사하고, 그곳에서 확보한 미미한 단서들을 바탕으로
너무나도 무모하고 막연한 진실 찾기에 나섭니다.
동시에 사고 당시 생존자는 물론 사진가 야마가에게까지 접근하여
어떻게든 그날, 고속도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내려 합니다.
누마이가 진실을 찾아낼 가능성 역시 10만 분의 1의 우연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추돌사건을 찍은 야마가의 사진에 관한 독자와 신문사 간의 논쟁을
약간은 과하다 할 정도로 초반부에 서술합니다.
너무나도 생생하고 참혹한 사고 순간이 담긴 사진을 굳이 신문에 싣거나
연간 최고상이라며 그 사진가에게 상금과 상패까지 주면서 치켜 올려야 하느냐, 라는 비난과
경종을 울리기 위한 보도사진의 속성이라는 신문사의 반론이 공방을 벌입니다.
이런 초반부의 장황한 서술은 이 작품의 주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데,
미야베 미유키는 해설을 통해 그 주제를 한마디로 정리해놓고 있습니다.
“개인이 자기표현을 위해서 하는 행동을 사회는 어느 선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이 작품 역시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답게
개인과 사회의 문제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서사를 다루고 있다는 해설입니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가 정리한 한 줄의 주제는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와 닿지 않았습니다.
조금은 맥락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사진가 야마가의 행동에는 사회적인 영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고,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과는 거리가 먼, 명예욕이라는 개인의 야망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약혼녀를 잃은 누마이의 진실 찾기 역시 개인의 복수 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포일러 때문에 그 이유에 관해서는 더 언급하기가 어렵네요. 죄송합니다.)
어쩌면 ‘10만 분의 1의 우연’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 가운데
가장 개인적인 수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파의 묵직한 서사가 밑받침되지 못한데다, 엔딩 역시 작위적인 느낌이 강해서인지,
지금까지 읽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몰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확실하게 개인적 수준의 순수한 미스터리, 그것도 중편 정도의 분량으로 완성됐다면
훨씬 더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