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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줏간 소년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패트릭 맥케이브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평점 :
알코올과 폭력에 중독된 아버지, 우울증과 자살중독증에 시달리는 어머니로 인해
불행하고 엇나간 유년기를 보내던 소년 프랜시는
새로 이사온 누전트 부인과 그녀의 아들 필립으로부터 천박한 돼지라는 비아냥을 듣게 되면서
가까스로 억눌려있던 악마성을 폭발시킵니다.
누전트 부인에 대한 엽기적인 응징으로 인해 마을에서 내쳐지기도 하지만
프랜시는 영악한 꾀를 내어 곧 마을로 돌아옵니다.
돼지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프랜시는 공교롭게도 푸줏간에서 ‘돼지’ 잡는 일을 거들게 되는데,
예전과 달리 또래들로부터 소외당하는가 하면, 유일한 친구였던 조까지 자신에게 등을 돌리자
그의 악마성은 걷잡을 수 없이 재폭발하고, 결국 도살이라는 참극을 벌이는 지경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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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가면을 쓴 채 칼을 들고 있는 소년이 그려진 포스터가 인상적이었던
영화 ‘푸줏간 소년’(1997년 작)의 원작소설입니다.
영화는 못 봤지만, 포스터만큼이나 파격적인 내용이라는 소문을 들은 기억은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라는 의문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그만큼 상징성이 강하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줄거리대로 ‘푸줏간 소년’은 소년 프랜시의 악마성이 폭주하는 이야기입니다.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이 바로 폭력이고 혼란이고 광기다.”라는 작가의 설명처럼
소설 속에 그려진 프랜시의 10여 년의 짧은 인생은 폭력, 혼란, 광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프랜시의 악마성과 광기는 만들어진 것인가, 타고난 것인가?’였습니다.
‘끔찍한 성장 동화’, ‘비극적인 성장기’라는 평가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타고난 사디스트 혹은 성장 중인 악마에 대한 관찰기’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분명 불행한 가족사와 추악한 어른들의 만행이 그의 캐릭터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단지 타고난 악마성을 수면 밖으로 끌어낸 격발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작가는 거의 한 번도 프랜시를 변호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저 세상과 어른들을 향한 프랜시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수많은 상징과 냉소가 뒤섞인 차갑고 불편한 코미디와 함께 풀어놓을 뿐입니다.
물론 프랜시의 타고난 악마성이 외적 요인에 영향을 받아 비약하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엉망진창인 부모가 봉인된 악마성을 툭 건드렸다면,
그를 돼지라 부르며 천대했던 누전트 부인은 악마성의 1차 폭발을 가져온 계기였으며,
쫓겨났다 돌아온 프랜시에게 가해진 소외와 배신은 상실감은 물론 위기와 공포까지 야기시켜
결국 ‘견딜 수 있는 수준의 악행’에 그쳐왔던 그의 악마성을 온전히 폭발시켜
도살이라는, 푸줏간 소년다운 참극을 일으키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평하자면, 읽기 편한 작품은 아닙니다.
이야기와 서사 자체의 독특함은 말할 것도 없고,
마침표나 쉼표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형식미와
대사와 생각과 지문의 구분도 쉽지 않은 특이한 문장들은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연극과 영화로 제작돼 (적어도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것은
프랜시로 대변되는 인간의 악마성에 대한 논쟁거리를 제공한 묵직한 서사 때문일 것입니다.
“아일랜드의 기후처럼 음습하고 강렬한 이야기를 주로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라는 평처럼
패트릭 맥케이브가 창조한 ‘잔혹한 소년기’는 딱 아일랜드의 하늘을 닮았다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