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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절규
하마나카 아키 지음, 김혜영 옮김 / 문학사상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꽤 오래 전 일이지만 일본 드라마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마츠코라는 한 여자의 롤러코스터 같은 비극적인 삶을 그린 드라마였는데,
누구의 삶이든 몇 시간 분량으로 압축해놓고 보면 파란만장하지 않은 경우가 없겠지만,
보는 사람이 아플 정도로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그녀의 인생을 보면서
개인과 사회의 문제, 운명과 선택의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침묵의 절규’의 주인공인 스즈키 요코는 언뜻 마츠코를 떠올리는 인물입니다.
좀 가볍게 표현하자면 이 세상 모든 불행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인생이라고 할까요?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에게 무시당하며 성장했고,
아버지의 빚과 동생의 죽음으로 가족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도쿄로 가고 싶은 갈망이 좌절되면서 소도시에서의 그녀의 삶은 점차 빛을 잃어가고,
독립여성의 행복이란 꿈을 이루기 위한 그녀의 모든 선택은 최악의 결과만을 낳습니다.
잠시 맛본 달콤한 순간을 잊지 못해 몸과 마음까지 망쳐가며 욕망에 사로잡혔던 그녀는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은 끝에 연쇄살인에 연루되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내용만 얼핏 봐도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전형적인 사회파 미스터리의 룰에 충실합니다.
초 호황기에서 버블 시대를 거쳐 동일본 대지진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현대사에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요코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버블 경제의 몰락은 요코의 인생과 가치관을 뒤흔드는 가장 큰 계기가 되고,
평범한 소도시 출신의 소녀를 나락으로 떠밀어 극단적인 욕망의 화신이 되게끔 만듭니다.
돈으로 자아를 선택할 수 있고, 돈으로 미래를 마음껏 설계할 수 있다는,
그럼으로써 숙명처럼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불행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는 요코의 신념은
그녀의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좀더 구조적인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하는 시대적 산물입니다.
작가는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한 돌직구 식 미스터리 대신 무척 독특한 서술방식,
즉 세 가지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다가 엔딩에서 ‘통합’시키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메인 이야기는 ‘너’라는 2인칭 시점의 서술로 요코의 일생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동시에, 고독사 사체로 발견된 요코의 죽음을 추적하는 여형사 아야노 이야기가 병행됩니다.
또, 요코와는 무관해 보이는 듯한 미제 살인사건의 관련자 진술을 막간처럼 등장시킵니다.
이런 구성은 단지 독특한 형식미 또는 무의미한 멋 부림이 아니라
막판 반전을 위한 절묘한 장치로 활용되어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데,
아동문학작가 출신인 ‘중고 신인’의 저력과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세 가지 시점의 서술이 번갈아 진행된 탓에
가끔 같은 상황에 대한 중복 묘사가 등장하는 것만 제외한다면
사회적 이슈와 재미를 잘 결합시킨 완성도 높은 대중 미스터리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좀 과한 폭력성과 선정성에 불편한 독자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작가의 불가결한 선택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일본에서도 주목받는다는 하마나카 아키의 신작을 곧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