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최면술사 형사 뤄페이 시리즈
저우하오후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최고의 최면술사 링밍딩은 총회를 통해 최면술을 심리치료에 이용하려는 포부를 갖고 있지만

그의 이론과 권위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총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때마침 일어난 변사 사건이 자신의 소행이라 주장하는 자가 스스로 최면술사라 칭하면서

링밍딩이 주최하는 최면술사 총회에 참석하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립니다.

룽저우 공안국 형사대장 뤄페이는 링밍딩과 함께 총회반대세력이자 변사사건의 범인을 쫓지만

용의자는 오히려 뤄페이와 경찰들을 최면에 빠뜨리며 유유히 자취를 감춥니다.

뤄페이는 링밍딩과 반대세력의 갈등이 시작된 오래 전의 사건은 물론

링밍딩의 제자가 연루된 최근의 살인사건들까지 파헤친 끝에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오히려 그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 ● ●

 

최면은 모든 범죄자들이 꿈꾸는 궁극의 방법이 아닐까요?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어 마음대로 요리할 수도 있고, 자살에 이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증오하는 사람끼리 싸움을 붙여 소위 일타쌍피를 건질 수도 있고,

집단 간의 충돌을 일으켜 수십, 수백의 목숨을 한 번에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심증만 있을 뿐, 기소에 필요한 아무런 단서나 증거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범인 입장에선 아주 손쉽게 완전 범죄를 완성할 수 있게 됩니다.

이쯤 되면 최면은 그야말로 지구상 최고의 살상무기인 셈입니다.

 

이 작품에는 두 명의 최고수 최면술사가 등장합니다. 링밍딩과 바이야싱이 그들인데,

링밍딩은 심리적 약점 혹은 트라우마를 지칭하는 심혈(心穴, 마음의 구멍)을 찾아내

그 위에 심교(心橋, 마음의 다리)를 설치함으로써 피최면자를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바이야싱은 심교론이 단지 미봉책일 뿐이며 오히려 심혈을 폭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럴 경우 피최면자는 완벽하게 구원되거나 아니면 완벽하게 파괴되는데,

그것은 피최면자의 의지나 마음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양쪽 다 보는 각도에 따라 수긍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이론들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늘 자살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이 있는데,

심교론은 그의 상처를 감싸주고 살고 싶은 희망을 북돋기 위해 애쓰는 반면,

폭파론은 그 상처를 폭파시킴으로써 상처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거꾸로 더 강력한 자살 욕구를 느끼는 부작용이 올 수도 있다고 부언합니다.

연이은 사망사건의 실체와 범인을 쫓는 룽저우 형사대장 뤄페이의 활약이 주된 이야기지만

작품 내내 밑바닥을 흐르는 심교론과 폭파론의 갈등은 색다른 재미를 주는 대목입니다.

특히 두 이론의 갈등은 클라이맥스와 마지막 반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딱히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이라고 구분할 수 없는 묘한 지점들이 있어

끝까지 독자들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올해 출간된 ‘13.67’에 이어 두 번째로 접한 중국 미스터리인데다,

나름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 불린다는 저우하오후이의 작품이라 큰 기대를 했었고,

전반적으로는 그런 별명이 결코 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좋은 기회였지만,

또 그만큼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최면술의 양대 이론이 설명되고, 주축인물들이 갈등의 구도를 완성할 때까지만 해도

이야기는 예측불허의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정작 주요 인물들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 중반부터 오히려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최면자체 때문이었는데,

속성으로 배워도 상대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즉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능력이며,

, 마음만 먹으면 천만 명쯤은 우습게 살해할 수 있는 신비한 마술처럼 과대 포장되면서

결과적으로 최면이라는 소재가 가진 매력과 힘을 모두 반감시키고 말았습니다.

 

또한, 복잡하게 설정된 인물들의 과거사나 악연의 계기 등은 다분히 작위적이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던 악몽, 인생의 반전을 갖고 온 특별한 계기 등

주요 인물들의 과거사에는 하나같이 최면이 개입돼있는데,

이는 이야기의 방향이나 전개를 결정짓는 요소가 전부 최면이란 뜻입니다.

결국 캐릭터도, 사건도 최면이라는 소재에 맞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느낌이 강했고,

그 결과 마지막 반전 역시 이야기의 힘에 의해 뒤통수를 때린다기보다

최면을 위한 반전’, ‘반전을 위한 반전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만큼이나 중화권에서 인기 있다는 형사대장 뤄페이는

잘 만들어진 명품 형사 주인공의 미덕을 모두 갖춘 캐릭터입니다.

불행한 과거와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지만, 현명함과 결단력도 겸비한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에서 언급됐던 사망 통지서사건이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그의 심혈이 된 에우메니데스라는 범인의 코드명도 호기심이 생겼고,

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됐는지도 꼭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악한 최면술사에서 느낀 아쉬움은 뤄페이의 캐릭터나 저우하오후이의 필력 자체보다는

최면이라는 소재가 가진 한계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뤄페이와 저우하오후이와의 두 번째 만남은 좀더 즐겁고 만족스럽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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