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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과 십자가 ㅣ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특수부대에서 근무하다가 경찰이 된 존 리버스는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를 충격에 빠뜨린
연쇄 소녀유괴살인사건을 수사하던 중 범인으로 보이는 자에게 의문의 편지들을 받습니다.
난해한 메시지와 함께 매듭에 쓰인 노끈 또는 성냥개비로 된 십자가가 동봉된 편지 때문에
리버스는 혼란에 빠짐과 동시에 왜 자신에게 이런 편지가 오는지 의아하게 여깁니다.
희생자는 무작위로 선정된 것처럼 보이고, 단서도 패턴도 없는데다
‘재미’가 아니라 ‘기록’을 위한 것처럼 보이는 범행 때문에 에든버러는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보전화를 받은 리버스는 범인의 진짜 계획을 파악하곤 충격을 받습니다.
특히 자신이 사건과 밀접히 연관됐음을 알게 된 리버스는
힘겹게 억눌러왔던 트라우마의 봉인이 해제되면서 패닉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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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매년 팔리는 범죄소설 중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엄청난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2005년 ‘부활하는 남자들’이 유일한 국내 소개작이었던 존 리버스 시리즈의 첫 작품입니다.
올해 6월,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페이스 오프’에 실린 단편 ‘인 더 닉 오브 타임’에서
이언 랜킨이 창조한 스코틀랜드 형사 존 리버스를 처음 만나긴 했지만,
생소한 캐릭터인데다 단편이다 보니 큰 감흥 없이 지나쳤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수부대 생활이 남긴 엄청난 트라우마, 어린 시절부터 각인된 불행한 가족의 기억,
주변 동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이혼이 가져다 준 엉망진창의 생활 등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인 삐딱이로 설정된 리버스의 캐릭터는
막연한 느낌이긴 하지만 해리 보슈나 해리 홀레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형사지만 정작 개인의 삶은 불행, 우울, 고독으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연약한 남자지만, 동시에 적재적소에서 활약하는 슈퍼맨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런 인간적인 면모 때문에 엄청난 시리즈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까요?
데뷔작에서 리버스가 마주친 사건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소녀유괴살인입니다.
그것도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10살 안팎의 소녀들이 연이어 희생자가 됩니다.
거기다 리버스는 범인으로부터 직접 편지를 받는 역할을 떠맡습니다.
사건은 충격적이고, 리버스가 사건의 중심에 놓이면서 이야기는 긴박하게 출발합니다.
하지만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정보와 설명들이 많이 개입됐고,
수사는 제보 이후 갑자기 급물살을 타면서 정신없이 흘러갑니다.
범인의 정체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고, 드러난 범행 동기는 조금은 밋밋해 보였습니다.
시리즈의 첫 작품들이 그렇듯 ‘매듭과 십자가’ 역시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야기의 상당 부분을 리버스의 과거나 가족사와 연관 지어 전개시켰는데,
그래서인지 파괴력이나 완성도 면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 것이 사실입니다.
오히려 캐릭터도 강하고 능력도 뛰어난 리버스의 모습으로 포문을 연 뒤
두 번째 작품쯤에서 과거사를 소개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애당초 이언 랜킨은 이 작품의 끝에 존 리버스를 죽일 작정이었다고 고백했는데,
그래서 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느라 이런 이야기 구성을 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해리 보슈나 해리 홀레를 연상시키는 만만치 않은 내공을 선보였으니
두 번째 작품부터는 ‘엄청난 시리즈’의 주인공으로서의 면모를 선보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한 주변에 배치된 조연들 – 동료 형사, 연인이 된 공보담당자, 스토커 같은 기자 등 – 은
확실한 존재감과 재미를 준 덕분에 이후 작품에서도 감칠맛 나는 역할이 기대됩니다.
특히 혼란 속에 빠진 리버스 옆에서 차분하게 추리를 진행하는 연인 질 템플러는
후속작에서 리버스와 어떻게 엮일지 궁금하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두 번째 작품인 ‘숨바꼭질’이 이 작품과 함께 동시에 출간됐는데,
어둑한 하늘과 수시로 내리는 비, 세기말을 연상시키는 풍광으로 유명한 에든버러를 무대로
존 리버스가 제대로, 멋있게 활동하는 모습을 꼭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