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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7월 7일, 오후 7시. 무명작가 사카이 마사오가 청산가리 중독으로 사망합니다.
경찰은 창작의 고뇌를 못 견딘 끝에 극단적인 선택, 즉 자살을 택한 것으로 결론지었지만
그를 아는 두 사람 – 편집자 아키코, 프리랜서 작가 쓰쿠미 – 은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각자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탐문을 벌입니다.
특히 그의 유고(遺稿)의 제목이 ‘7월 7일 오후 7시의 죽음’이라는 점은
함부로 자살이라 단정할 수 없을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아키코는 사카이에게 의문의 돈 뭉치를 건넸던 미모의 여성 리쓰코를,
쓰쿠미는 여동생의 자살을 사카이의 탓으로 여긴 편집장 야나기사와를 범인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두 용의자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주장했고, 결국 탐문은 알리바이 깨기에 집중됩니다.
집요한 조사를 진행하던 아키코와 쓰쿠미는 결국 사카이의 행적 속에서 단서를 찾아내지만
그들이 마지막에 맞닥뜨린 사카이 마사오의 죽음의 진실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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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 살의’처럼 대놓고(?) 서술트릭이라고 밝힌 작품들은 독자의 도전의식을 불태웁니다.^^
첫 페이지부터 어떻게든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위화감을 풍기는 문장이 나오면 메모를 해놓거나 머릿속에 꼭꼭 저장해놓습니다.
작가의 트릭을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다가 뒤통수를 맞아야 재미가 극대화되겠지만
이상하게 서술트릭이란 딱지만 붙으면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곤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방 살의’는 제법 독자에게 친절한 서술트릭입니다.
그러니까 눈치 챌만한 단서를 간혹, 아주 애매한 형태로나마 남겨줍니다.
똑똑한 독자들은 2/3쯤 됐을 때 1차적인 사건의 진상은 눈치 챌 수도 있지만,
좀더 복잡한 진실의 모습은 결국 끝까지 가야 제대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치밀하고 완벽한 트릭의 설계를 위해 작가가 들였을 노력을 감안한다면
역시 마지막 한 방에 뒤통수를 맞아주는 것이야말로 독자의 도리라는 생각입니다.^^
작가는 서로 모르는 두 명의 주인공에게 탐문의 미션을 부여함으로써
두 갈래의 수사가 중간에 합쳐지면서 진실이 드러날 것 같은 구도를 설정했습니다.
아키코가 치정, 가족사, 돈에 얽힌 문제로 조사를 벌이는 한편,
쓰쿠미는 원한 쪽에 무게를 두고 탐문을 벌입니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전개된 추적이 과연 어디에서 접점을 만들어낼지,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찾아내는 단서는 무엇이 될지 읽는 내내 궁금함을 자아냅니다.
거기에 덧붙여 사카이의 죽음과는 무관한(또는 관계가 적은) 에피소드들을 동원하여
메인 사건 외의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알려진 대로 서술트릭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보다는 ‘잘 짜인 트릭을 품은 미스터리’라는 평이 온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서술을 무기로 독자의 눈을 속이고 뒤통수를 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정교한 설계도에 따라 꼼꼼히 구축된 웰 메이드 미스터리이기 때문입니다.
‘살육에 이르는 병’이나 ‘벚꽃 지는 계절에~’의 충격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조금은 심심한 서술트릭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1973년에 출간된 일본 미스터리’ 정도의 정보만 갖고 이 작품을 읽는다면
작가가 존경의 뜻을 표했던 엘러리 퀸 이상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 사후 비로소 제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이라고 해서 더 기대를 했고,
실제로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잘 익은 과일처럼 맛깔난 재미를 느꼈습니다.
이 작품 이후 이어진 ‘살의(殺意) 시리즈’가 앞으로도 계속 출간돼서
비운의 작가의 명품들을 계속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