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내로라하는 작가라면 적어도 한 작품 정도는 대표작으로 갖고 있을 정도로

일본의 장르물 문단은 소년 범죄나 왕따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우타노 쇼고의 세상의 끝 혹은 시작’, 오리하라 이치의 침묵의 교실’,

구로타케 요의 그리고 숙청의 문을’, 츠지무라 미즈키의 오더 메이드 살인클럽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10대들의 범죄나 왕따에 관한 이야기는

나열하자면 끝도 없이 이어질 만큼 다양하게 출간되어 왔습니다.

 

침묵의 거리에서는 질풍과 노도의 정점에 서있는 중2 학생들의 왕따 이야기입니다.

왕따를 당하던 지역 유지의 아들이 학교에서 추락사한 채 발견되고,

왕따의 주범으로 알려진 4명의 학생이 경찰의 수사망에 걸려들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하지만 10대들의 범죄나 왕따를 다룬 일반적인 미스터리 작품들과는 달리

침묵의 거리에서는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보다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의 딜레마에 집중합니다.

한쪽에선 왕따의 기운이 움텄던 학기 초부터 사건이 벌어진 현재까지의 디테일한 이야기를

교실과 동아리를 중심으로 전개시킵니다.

또 다른 한쪽에선 학교, 경찰, 검찰, 변호사, 언론, 유가족, 가해자 가족 등

사건과 관련된 어른들사이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갈등과 딜레마를 리얼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인지 끈질긴 탐문과 추리, 예기치 못한 반전의 충격을 기대한 미스터리 독자들에게는

침묵의 거리에서는 늘어지거나, 동어반복이거나, 양비론에 불과하거나,

또는 막판의 한 방이 없는 심심한 작품으로 읽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10대가 사건 중심에 놓인 이야기 가운데

이 작품만큼 딜레마에 대해 깊이 있고 리얼한 서사를 내놓은 작품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저 역시 미스터리를 기대했던 탓에 약간의 지루함과 동어반복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읽는 내내 어느 누구도 편들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혼란과 딜레마를 겪으면서

오히려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공식과 미스터리 서사에만 충실했던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른

특별한 독후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유가족은 동정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무책임한 부모로서 비난의 대상으로 그려집니다.

학교는 단호하고 원칙적인 대응을 주장하는 세력과 봉합에 급급해 하는 세력으로 갈립니다.

경찰 역시 강경한 형사과와 온정적인 생활안전과가 보이지 않는 각을 세우고,

가해자 가족은 자기 자식만큼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주장을 펼치던 끝에

누가 주모자냐?’를 놓고 서로를 비난하는 형국에 놓입니다.

그저 신참 여기자를 앞세운 언론만이 양쪽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유일한 캐릭터입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4명의 학생과 추락사 한 피해자 역시

알고 보면 진실은 따로 있다는 식으로 양면성을 지닌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여기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실망감을 느낀 독자들 가운데 대부분이 엔딩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는데,

아무래도 이야기 자체가 숨어있는 진실이나 충격적인 반전과는 거리가 먼 전개를 펼친 탓에

그런 식의 엔딩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30페이지도 채 남지 않았는데, 작가는 전혀 이야기를 수습할 생각이 없어 보이고,

혹시 3권이 있는 건가?,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야기는 평범하게 전개됩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작가가 무리해서 뭔가 예상치 못한 엔딩을 만들었다면,

그러니까 억지로 교훈을 준다든가, 작위적인 반전을 만든다든가 했다면,

오히려 그것은 이 작품의 결정적인 흠이 됐을 것입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팬이다 보니 작품의 미덕만을 강조하고 싶은 사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침묵의 거리에서는 왕따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소재를 통속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보다는

다양한 입장들을 간접경험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르포의 느낌으로 풀어냄으로써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된 매력을 갖췄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저 역시 다른 독자들과 비슷한 지점에서 아쉬움을 느꼈기에

오쿠다 히데오가 조금만 더 대중적인 전개와 독자가 원하는 엔딩을 감안했더라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

 

700여 페이지의 내용을 두 권으로 분권한 만만치 않은 분량이지만

쉽고 명쾌한 오쿠다 히데오의 문장 탓에 하루면 충분히 마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왕따나 10대의 이야기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침묵의 거리에서를 통해 기존의 유사한 소재를 다룬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시각과 입장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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