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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의 마 ㅣ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1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타인에게 나타난 사상(死相), 즉 죽음의 그림자나 증상을 볼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바탕으로 탐정이 된 쓰루야 슌이치로의 활약을 그린 두 번째 장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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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쿠 대학의 괴기 동아리인 ‘백괴(百怪) 클럽’ 멤버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기숙사 지하실에서 독특한 악마 소환 의식이자 강령술인
‘사우의 마’ 의식을 치른 뒤 연이어 기이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클럽 멤버들 중 일부로부터 유령 같은 검은 여자를 목격했다는 진술을 들은 슌이치로는
의식이 벌어졌던 기숙사 지하실의 음습한 분위기와 검은 여자의 정체에 주목합니다.
특히 기숙사 지하실에서 일어났던 과거의 비극적 사건들 때문에
슌이치로와 클럽 멤버들은 그때의 원령(怨靈)이 검은 여자의 형체로 나타났다고 의심합니다.
슌이치로가 사건 조사를 시작한 이후에도 기이한 죽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슌이치로는 유명한 무녀인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진상을 밝혀냅니다.
아무도 예상 못한 범인의 등장에 클럽 멤버들과 경찰들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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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괴 클럽이 벌인 ‘사우의 마’라는 강령술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 때문에
사상학 탐정 슌이치로는 이야기 중반부쯤에야 등장합니다.
예전보다 훨씬 더 성숙해졌을 뿐 아니라, 탐정으로서의 능력이나 매너도 향상된 슌이치로는
타인의 죽음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과 뛰어난 추리를 바탕으로
누가 봐도 원령에 의한 저주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는 기이한 사건의 진실을 밝혀냅니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완벽한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사우의 마’라는 강령술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면서도 서서히 공포심을 고조시키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검은 여자의 모습으로 기숙사를 얼어붙게 만드는 정체불명의 존재는
끝까지 정말 원령인지 인간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묘사됩니다.
아무래도 주인공 슌이치로의 능력 자체가 비현실적인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보니
‘모든 것이 원령의 소행이다’라고 결론이 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에
독자는 ‘설마’와 ‘그렇지 않을까?’의 경계에서 수시로 혼란을 겪게 됩니다.
여름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미쓰다 신조 식 호러라 순식간에 끝까지 달릴 수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슌이치로가 처음으로 등장했던 호러 단편집 ‘붉은 눈’이나
첫 장편 ‘사상학 탐정-13의 저주’에 비해 호러물로서의 매력이나 진실을 밝히는 과정 등
여러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던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달음이 찾아왔다’는 식의 슌이치로의 추리방식이 아쉬웠는데,
진범을 특정한 근거나 범행동기에 대한 설명은 어딘가 끼워 맞추기 식 해명의 느낌이 강했고,
거듭 이어지는 반전 역시 뒤통수를 치는 충격보다는 작위적인 설정에 가까웠습니다.
도조 겐야 시리즈나 작가 시리즈를 통해 미쓰다 신조가 즐겨 사용해온
‘인간의 살의와 원령의 저주’라는 트레이드 마크가
왠지 ‘사우의 마’에서는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아닌 걸 알면서도 어느 새 빨려 들어가고 마는 극한의 공포라든가,
인간의 살의와 원령의 저주를 자연스럽게 믹스시킨 탁월한 필력,
그리고 반전과 반전 끝에 드러난 진실이 전해주는 충격 등
미쓰다 신조 표 호러물만의 특별함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고 할까요?
오히려 단편이라면 슌이치로의 매력을 더 잘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타인의 죽음을 내다보는 능력은 사건의 발단에서는 위력을 발휘하는 설정이지만,
장편의 이야기를 끌고 가려면 그 이상의 매력과 능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
어쩌면 사상학 탐정이라는 캐릭터 자체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려면 지금의 슌이치로만으로는 조금 무리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입니다.
전작에서부터 언급된 ‘치명적이고 엄청난 힘을 지닌 적’이 언제쯤 등장할지 모르겠지만,
그 대결에서만큼은 슌이치로가 장편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