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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제자들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0
이노우에 유메히토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돌연변이를 거쳐 탄생한 치사율 100%의 신종 바이러스로 고후 시 일대가 쑥대밭이 됩니다.
‘용뇌염’ 혹은 ‘드래건바이러스’라 명명된 이 재난 속에서 기적적으로 네 사람만이 생존하는데
문제는 이들이 심각한 후유증, 즉 상식 밖의 능력을 지니게 됐다는 점입니다.
마음만으로 사물을 움직일 수 있는 염동력(念動力),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는 투시력,
그리고 회춘(回春)과 빙의의 힘 등 초현실적인 능력들이 그것입니다.
바이러스를 퍼뜨려 수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킨 주범들로 낙인찍힌 가운데
병원이 제공한 거처에 머물며 바이러스의 연구에 일조하는 한편
자신들의 초능력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훈련을 받던 이들은
사회로 복귀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매스컴을 통해 자신들의 초능력을 선보이지만
그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참극에 빠지고 맙니다.
결국 경찰이 개입하고 이들을 체포하려 하지만 오히려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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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만화인지 영화인지 모르겠지만
번개를 맞고 초능력을 갖게 된 주인공이 등장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초능력까지는 아니지만 헐크 역시 연구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해
초인적인 육체와 힘을 갖게 되는 캐릭터지요.
‘마법사의 제자들’에 등장하는 초능력자들은 예전의 캐릭터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그야말로 슈퍼 울트라 급 능력자들입니다.
공중부양이나 과거를 투시하는 능력은 애교이고,
차를 탄 채 날아다니거나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는 것은 물론
심지어 빙의를 통해 타인을 조종하거나 산허리를 잘라낸 뒤 공중에 띄우기도 합니다.
치사율 100%의 신종 바이러스의 습격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인물들이
초능력자가 되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 ‘마법사의 제자들’은
말 그대로 현실을 넘어선 판타지 오락물이지만
얼마 전 메르스를 겪은 한국 독자들에겐 남다른 섬뜩함을 느낄 수 있는 소재입니다.
염동력, 투시력, 빙의와 회춘 등 위험하지만 누구나 욕망하기 마련인 다양한 초능력,
인류의 멸망까지 초래할 만큼 극도로 위험한 바이러스,
어딘가 의심스런 병원의 태도, 경찰의 무리한 진압이 불러온 유혈참사,
매스컴의 흥분과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초능력에 대한 여론 등
블록버스터 급 설정들이 다채롭게 등장한 덕분에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에, 갈수록 초현실성이 증폭되는 이야기들이 전개되지만
이상하게도 거부감이나 황당함은 전혀 느낄 틈이 없습니다.
사실 언뜻 봤을 때는 로빈 쿡의 ‘감염’이나 ‘코마’처럼 메디컬 스릴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런 내용이라고 하기엔 제목이 너무 특이해서 궁금함과 호기심이 일었는데,
막상 초능력이라는 소재가 튀어나오자 당황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호러물도 좋아하고 초현실적인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초능력을 가진 캐릭터에 대해서는 약간의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향을 가진 독자나 기본적으로 판타지나 SF물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물 흐르듯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가의 필력에 한 번 발을 담그면
단숨에 끝까지 끌려갈 정도로 이야기의 흡입력은 대단합니다.
“이 뒤에 남은 분량을 무슨 이야기로 채우려고 하지?”라는 의문이 들 때마다
작가는 생각지도 못한 시퀀스를 도입하면서 새로운 긴장감을 조성하고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엔딩에 대해서는 아마 호불호가 좀 갈릴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몇 페이지 남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정리하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을 최악으로 치닫게 만든 작가가 어떤 엔딩을 준비했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개인적으로 100% 만족할만한 엔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인상을 찌푸릴만한 엔딩도 아니었습니다.
이노우에 유메히토는 작년 여름 ‘러버 소울’로 처음 만났는데,
그때도 뛰어난 필력과 반전으로 기대 이상의 매력을 느낀 기억이 있습니다.
‘러버 소울’을 읽은 후 그와 도쿠야마 준이치가 콤비작으로 내놓은
‘클라인의 항아리’에 큰 관심을 갖게 됐었는데
절판 상태라 중고서점에서라도 찾아야지, 해놓고 금세 1년이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또 공수표가 될 수도 있지만, 읽는 건 나중이라도 어떻게든 구매라도 시도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