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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더 메이드 살인 클럽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스토리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남이 아닌 자신을 죽여달라고 ‘주문’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 ‘주문’을 받은 사람은 동갑의 남자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만 14세의 소녀 앤과 소년 도쿠가와입니다.
“날, 죽여주지 않을래?”
“그래도, 돼?”
고바야시 앤의 일상을 점령한 두 공간, 학교와 집은
14살 소녀의 삶을 끔찍한 통과의례로 만듭니다.
배신과 밀약, 왕따와 서열이 판치는 계급사회 그 자체인 중학교 교실,
완벽한 화목과 빈틈없는 가족애를 꿈꾸는 엄마의 왕국이자 질식할 것만 같은 집...
성적도, 동아리 활동도, 외동딸로서의 역할도 무난하게 소화하던 앤이지만,
한편으로 그녀는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고, 자살이나 살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며,
팔과 다리가 잘린 인형을 찍은 사진집에 집착하는 소녀이기도 합니다.
그녀에게 살해를 주문받은 도쿠가와는 아무렇지도 않게 동물을 죽이는가 하면,
어둠으로 꽉 채워진 배경 속에 붉은 꽃잎, 짐승의 이빨, 한 하늘의 달과 태양을 그려
미술대회에서 수상권에 들기도 한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소년입니다.
앤은 오랫동안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 남도록 전례 없는 패턴으로 자신을 죽여달라고 주문하고
도쿠가와는 기꺼이 그 주문을 받아들입니다.
두 사람은 ‘비극의 기억’이라는 노트에 살해날짜와 동기, 가능한 방법 등을 차곡차곡 적으며
전무후무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준비를 합니다.
‘오더 메이드 살인클럽’은 고통스러운 성장기이며 특이한 미스터리입니다.
앤이 살인을 주문하는 계기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 또래의 뇌구조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기성세대에게는 설명도 해석도 불가능한 일종의 불치병이거나 일탈행위입니다.
사실 14살의 행동 중 설명과 해석이 가능한 영역은 별로 없습니다.
앤에게 왜 죽음에 관한 기사나 팔다리가 잘린 인형의 사진집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답이 없는 우문일 뿐입니다.
그건 마치 “저 남자(여자)를 왜 좋아해?”라는 것과 비슷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앤의 주문을 받아들여 “죽여줄게.”라고 대답한 도쿠가와에게도 그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불가지론만으로는 곤란하니 작가는 나름 두 소년, 소녀에게
그럴 듯한 물리적인 환경과 동기를 부여하긴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아기의 트라우마나 불행한 가정사 같은 클리셰를 동원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에 가까운, 즉 겉으로는 너무나 평화롭게 보이는 환경들을 설정함으로써
작가는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사실감을 확대시킵니다.
‘오더 메이드 살인클럽’의 미스터리로서의 성격은 좀 모호합니다.
결국 독자의 관심은 앤의 주문이 성공할 것이냐, 에 쏠리게 되는데,
그 외에는 독자의 관심을 끌고 반전을 구사할 미스터리로서의 요소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앤의 주문의 성패 여부는 몇 번씩 요동치며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주문형 살인의 미스터리와 극적인 엔딩의 재미보다는
14살의 앤과 도쿠가와의 성장통에 좀더 주력하며 집필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계산하지 않고 써내려갔다.”는 작가의 고백을 보면
아무래도 그런 추측이 무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에 따라 비현실적이라거나 너무 극단적인 설정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북한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대한민국 중2’라는 그저 웃기만은 어려운 세태를 감안하면,
‘오더 메이드 살인클럽’ 속의 앤과 도쿠가와의 살인거래가 당장 현실에 나타난다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