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역사 뫼비우스 서재
케이트 앳킨슨 지음, 임정희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띠지를 보면 케이트 앳킨슨을 영국 최고의 휴먼미스터리 작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피로 얼룩진 살벌한 범죄소설에 따뜻한 인간미를 덧입힌 작품이라는 번역자의 후기 역시

휴먼미스터리 작품으로서의 살인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정리한 문구입니다.

 

이야기는 영국 캠브리지에서 벌어졌던 세 개의 사건을 동시에 전개시키는데,

1970, 3살 때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올리비아 랜드를 찾는 일,

1979, 남편을 도끼로 살해하고 수감된 미셸의 갓 태어난 딸 탄야의 행방을 찾는 일,

1994, 아빠의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로라를 살해한 괴한을 찾는 일 등입니다.

 

사건의 성격만 놓고 보면 정통 미스터리와 다를 바가 없는 설정이지만

이 작품을 휴먼미스터리로 소개한 이유를 몇 가지 꼽아보면,

우선, 이야기의 뼈대 자체가 진실 혹은 진범 찾기보다는

2004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 또는 회한에 맞춰져있기 때문입니다.

희생자들은 하나같이 가족들에게 사랑받던 딸 또는 동생이었고,

그들을 잃은 가족들은 짧게는 10, 길게는 34년간 아물지 않는 상처 속에 살아왔습니다.

민낯 그대로 상처와 고통을 드러내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그것들을 꼭꼭 봉인한 채 자신의 삶에 충실하려고 발버둥치는 가족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무겁고 어두운 톤으로만 풀어놓진 않습니다.

영국식 냉소를 담은 시니컬한 문장이나 풍자와 해학이 묻어나는 블랙유머를 구사하는가 하면,

어쩐지 안쓰럽고 애틋한 시선으로 캐릭터를 바라보는 듯한 묘사를 동원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을 휴먼미스터리라고 정의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세 개의 사건을 수사하는 잭슨 브로디(전직 경찰이자 현직 사립탐정)의 캐릭터가

탁월하거나 하드보일드한 면모를 자랑하는 명탐정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능력자일 뿐이며

그의 수사 방법 역시 딱히 특별하다고 할 것 없는 일반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는 (비록 이혼 후 아내가 키우고 있지만) 딸을 가진 아버지의 입장에서,

또 어린 시절 소중한 가족을 연이어 잃은 비극을 겪은 입장에서

의뢰인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그들의 호소를 들어주는 일에 더 힘을 씁니다.

물론 나름의 성실함으로 대부분의 사건을 해결하지만

일부는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우연과 운명에 의해 해결되기도 합니다.

 

휴먼미스터리라는 장르적인 특별함도 그렇지만,

세 가지 사건이 묘하게 접점을 갖게 만든 형식적인 독특함도 눈길을 끄는 부분입니다.

세 사건 모두 캠브리지라는 한 공간에서 벌어진 탓도 있지만,

작가는 약간의 작위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세 사건에 얽힌 인물들이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도록 설정해놓았습니다.

독자에 따라 그 작위적인 인연을 불편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수용 가능한 수준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한 가지 잘 이해가 안 된 부분은 번역 제목이었는데,

이 작품의 원제는 ‘Case Histories’입니다.

어떻게 번역해야 원제의 맛이 잘 살아날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은 후의 솔직한 느낌은 살인의 역사라는 번역 제목은

어쩐지 내용과 잘 매치되지도 않을뿐더러 약간은 전략적(?)인 냄새가 풍기는 느낌이었습니다.

제목만 보고 거창한 스릴러를 연상한 독자들에겐 약간의 배신감이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휴먼미스터리라는 색다른 장르에 호기심이 있거나

미스터리엔 관심이 없더라도 영국식 냉소와 유머가 뒤섞인 묘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살인의 역사는 의외로 매력적인 작품이 돼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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