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의 문제 진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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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별난 철학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특이한 캐릭터 진구가 첫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수학 천재 중학생이었지만 아버지의 의문의 죽음 이후 삶 자체가 제 길을 벗어났고,

시큰둥한 호기심에 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했지만 그 역시 3년 만에 접었으며,

지금은 딱히 세상사는 목표 같은 것도 없이 그저 내키는 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런 그가 연인인 주해미와 함께 맞닥뜨리는 7편의 사건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경찰, 유족, 직장동료로 변신해가며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동시에

아파트 한 채 값의 수입까지 올리는, 그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표제작 순서의 문제’,

셜록 홈즈처럼 사소한 진술을 들은 것만으로

사건의 전모를 눈앞에서 지켜본 듯 밝혀내는 대모산은 너무 멀다’,

특유의 기지(?)를 발휘하여 자살로 결론 난 사건을 손바닥 뒤집듯 살인사건으로 변모시키지만,

인간의 너저분한 탐욕에 대해서만은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는 중편 티켓 다방의 죽음’,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위장된 알리바이의 허구를 파헤치는 것과 동시에

도진기 작가의 또 다른 히어로 고진 변호사와의 첫 만남을 그린 단편 뮤즈의 계시’,

그리고 진구와 해미의 프리퀄 격으로 첫 만남 때 마주친 살인사건을 그린 환기통

사이즈는 중단편이지만 각 편마다 뚜렷한 개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어

진구라는 캐릭터와 처음 만나는 독자에겐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작품집입니다.

 

사실 진구는 그 정체성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이 어려운 캐릭터입니다.

정의감으로 뭉친 명탐정인가 하면, 법을 우습게 여기는 불량시민의 면모도 있고,

세상을 달관한 백수인가 하면, 돈에 관한 한 절대 뒤지지 않는 욕심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출판사의 책소개에 나온 진구에 대한 설명은 100% 공감 가는 내용이었습니다.

 

도덕과 정의를 위해 재능을 쓰는 여타의 탐정과는 달리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범죄에만 반응하고,

법망의 허점을 찾아내어 이용하는 데 일말의 주저도 없는 진구는 소시오패스에 가깝다.

비상한 두뇌와 마비된 모럴(moral)로 범죄의 진실을 파헤치는 그는

가끔은 범죄자만큼이나 악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의 아슬아슬한 이중성을 보완해주는 것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해미의 역할입니다.

때론 철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진구에게 있어 그녀는

그가 좋아할만한 사건을 물어다 주는 중요한 사건 브로커(?)이자

대책 없이 게으름을 부리고 싶을 때 정신이 번쩍 나게 해주는 냉수 같은 존재입니다.

진구의 천재성이나 사건의 해결 과정만큼이나 두 사람의 투닥대는 멜로 라인은

진구 시리즈를 읽는 또 다른 재미입니다.

 

냉철하고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하드보일드 명탐정도 좋아하고,

마음껏 천재의 끼를 발휘하는 안하무인 명탐정도 좋아하지만,

그 두 개의 얼굴을 모두 가진듯한, 그래서 더 애정이 가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진구는

앞으로의 성장과 활약상이 더욱 더 기대되는 매력덩어리 캐릭터입니다.

진구 시리즈의 최신작 가족의 탄생이 출간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그 후속작이 기다려지는 것은 저만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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