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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 죄인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23년 전, 강간살인을 저질렀지만 공소시효를 통해 벌을 피했던 자가 강도살인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체포됩니다. 누군가는 23년 전의 죄를 묻기 위해 그에게 누명을 씌워서라도 강도살인의 진범으로 몰아가기로 작심합니다. 반면 누군가는 그의 과거를 사면해준 공소시효와 그가 저지른 흉악한 범죄에 분노하면서도 그가 이번 강도살인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곤 그의 누명을 벗겨주려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두 명의 ‘누군가’가 모두 유능한 검사들이란 점입니다. 다만, 한 사람은 23년 전의 피해자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검사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철저하게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검사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정의에 대한 관점도, 수사의 목적도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누구를 응원하고 싶을까요?

개인적으론 과거의 죄를 묻기 위해 누명을 씌워서라도 악당을 징벌하려는 검사의 편입니다. 하지만 거기엔 엄청난 딜레마와 갈등이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명을 씌운다는 행위 자체도 그렇지만, 그로 인해 강도살인의 진범이 법의 심판을 벗어나게 된다는 딜레마도 발생하고, 과연 그런 행위가 과거의 죄를 제대로 심판할 수 있느냐는 갈등도 일어납니다. ‘검찰 측 죄인’은 바로 그런 딜레마와 갈등을 정면으로 파고든 걸작입니다.
사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도 이 딜레마와 갈등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시즈쿠이 슈스케는 오히져 정반대의 길, 그러니까 독자에게 한없이 무거운 감정과 숙제를 내준 채 작품을 마무리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법이 정한 정의와 내가 정한 정의 사이의 간극은 메워질 수 있는가? 법이 포기한 악인에 대한 사적 심판은 과연 정의인가? 체포되지 않았더라도 그만한 시간이면 징벌에 준하는 고통을 충분히 받았다고 규정한 공소시효란 과연 정의라고 할 수 있는가?
작가는 굳이 반전의 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돌직구처럼 처음부터 독자에게 모든 패를 내보인 채 앞만 보고 달려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엄청난 에너지와 가속의 힘을 지닙니다. 그래서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이지만 한나절도 안 돼 끝까지 내달릴 수 있습니다.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을 보면 셀프 스포일러가 적잖이 담겨있습니다. 법정 미스터리나 공소시효, 원죄, 검사들의 세계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작품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운 좋게 시즈쿠이 슈스케의 대표작인 ‘범인에게 고한다’를 최근에 손에 넣었는데, ‘검찰 측 죄인’을 보고 나니 당장이라도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