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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강 - 판타스틱 픽션 BLACK 14-2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4
마이클 코리타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한때 할리우드에서 잘 나가는 촬영감독이었지만 지금은 장례식에서 상영될 고인의 영상물 제작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에릭 쇼는 어느 날 임종을 앞둔 한 거부(巨富) 노인의 과거사를 취재해달라는 의뢰를 받습니다.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 거기에 깃든 사연이나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에릭은 남부 인디애나에서 노인의 과거를 쫓던 중 예상치 못한 환각을 연이어 목격합니다. 야비하고 탐욕스런 노인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소년이 등장하는 환각 속에서 에릭은 때론 그들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깊이 개입하는가 하면, 때론 철저하게 관객이 되어 그들에게 일어났던 과거의 끔찍한 사건을 지켜보곤 합니다.
한편, 비루한 삶을 살아가던 조시아는 시카고에서 온 에릭이란 사람이 자신의 증조부에 대해 조사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듣곤 발끈합니다. 안 그래도 정체불명의 노인이 등장하는 기이한 꿈을 연이어 꾼 후로 근원 모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조시아는 에릭의 존재를 극도로 경계하면서 점차 위험한 지경으로 스스로를 몰아갑니다.

앞서 읽은 마이클 코리타의 ‘밤을 탐하다’와 ‘오늘 밤 안녕을’의 서평에 “할리우드 영화에 잘 어울리는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고 쓴 적이 있는데, 그래선지 사전정보 없이 읽은 ‘숨은 강’은 여러 가지로 쇼킹함(?) 그 자체였습니다. 읽는 내내 스티븐 킹의 ‘샤이닝’이 연상됐는데, 인터넷서점을 살펴보니 역시나 추천사나 소개글에 ‘샤이닝’이 거듭 언급돼있었습니다.
“마이클 코리타의 웨스트바덴 호텔이 스티븐 킹의 오버룩 호텔을 만났다.” (댄 시먼스)
“마이클 코리타는 스릴러적 요소와 스티븐 킹을 떠오르게 하는 호러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혼합시켜 복합장르의 재미를 가져다준다.” (북리스트=미국도서관협회)
실제로 ‘샤이닝’의 잭 토런스와 ‘숨은 강’의 에릭 쇼는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환청을 듣고 환각을 볼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고, 실재하지 않는 악마적 존재와 마주친 끝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는가 하면, 신경증과 두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찾는 약마저 아스피린 계열의 엑세드린으로 동일합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두 주인공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이 무척 많은 편이고,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나 악의 캐릭터 역시 유사점을 많아서 그런지 ‘샤이닝’에 대한 오마주, 또는 스티븐 킹에 대한 헌사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자 가장 중요한 무대인 ‘숨은 강’은 지하로 흐르던 본류가 지형적인 영향 때문에 간혹 웅덩이의 형태로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80년 전, 남부 인디애나의 작은 마을은 그 물을 이용한 생수산업으로 번영기를 구가했지만 대공황의 혼란 속에 탐욕과 이기심으로 중무장한 인물들로 인해 끔찍한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환각과 유령을 통해 80년 전의 비극에 휘말린 에릭과 조시아는 각자의 진실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이는데, 이들의 대결은 마치 ‘샤이닝’에서 오버룩 호텔에 잠식당한 잭 토런스와 그곳을 탈출하려는 모자(웬디와 대니)의 대결처럼 긴박하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환각을 빚어내는 생수, 그 생수의 근원인 숨은 강, 그 강을 놓고 벌어졌던 80년 전의 탐욕으로 점철된 비극,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에릭과 조시아의 대결로 다시 한 번 되풀이되는 비극.... 스티븐 킹의 호러물, 특히 ‘샤이닝’과 그 후속작인 ‘닥터 슬립’의 팬이라면 ‘숨은 강’을 통해 그때의 흥분과 긴장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밤을 탐하다’나 ‘오늘 밤 안녕을’을 기억하는 마이클 코리타의 팬이라면 호러 판타지로 이뤄진 ‘숨은 강’이 조금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독자를 자유자재로 롤러코스터 위에 올려놓는 그의 천재적인 필력 덕분에 장르의 충격과 당혹감은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밤을 탐하다’ 이후 2년이 되도록 그의 후속작이 출간되지 않아 무척 아쉬웠는데 RHK에서 올 가을에 그의 신작을 출간한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오늘 밤 안녕을’에 이은 ‘링컨 페리 시리즈’가 됐든 스탠드얼론이 됐든 마이클 코리타의 신작이라면 무조건 대환영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