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토어 밀리언셀러 클럽 138
벤틀리 리틀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조용하고 풍광 좋은 애리조나의 작은 마을 주니퍼에 대형마트 더 스토어가 들어서면서 아무도 예상 못한 대혼란과 급격한 변화가 몰아닥칩니다. 더 스토어는 마을의 상권은 물론 의회, 경찰, 소방, 언론, 학교까지 먹어치우면서 마침내 주니퍼의 모든 것을 장악합니다.

처음부터 더 스토어의 등장을 불안하게 여겼던 빌은 주니퍼 내의 자영업자들이 몰락하거나 사라지거나 가게를 잃는 지경에 이르자 신문편집장 벤, 스트리트 등과 함께 더 스토어의 만행에 저항해보지만 오히려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합니다. 특히 더 스토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두 딸에게서 심상치 않은 변화를 목격하면서 빌은 도청과 감시의 눈길을 뚫고 더 스토어와 정면대결을 펼치기로 결심합니다.

 


더 스토어는 소도시의 상권을 잠식하며 이익을 독점하는 단순한 대형마트가 아니라 작품 속에서 기업 흡혈귀라고 묘사되듯 실제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존재합니다. 대형마트가 없는 소도시만 골라 각종 혜택을 받으며 지점을 오픈한 뒤 의식주는 물론 행정과 언론에 이르기까지 그곳의 모든 것을 천천히 잠식합니다. 자영업자는 모조리 몰락하거나 주니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고,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사람들은 끔찍한 비극을 맞이합니다.

취약한 재정을 보완하기 위해 더 스토어의 등장을 환영하며 온갖 특혜를 줬던 의회는 결국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다가 파멸의 길을 걷게 되고, 큰 혜택을 누리게 됐다고 좋아하던 소비자들은 점차 더 스토어의 노예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거대 권력이 된 더 스토어에게 그 누구도 저항하지 못합니다. 이미 누군가 사라지거나, 의문의 죽음이나 방화를 당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일그러진 자본주의의 단면과 함께 작가는 더 스토어를 통해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타인을 통제하며 쾌감을 느끼는 권력의 중독성을 설파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끔찍한 방법으로 직원들의 정신과 육체를 장악하는 과정이나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에게 가차 없는 응징을 가하는 장면, 또 폐점 후 목격되는 정체불명의 존재들(밤의 매니저)을 등장시켜 문명화된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잔혹극의 공포감을 상승시킵니다.

 

주니퍼를 지키기 위해 더 스토어에 저항하는 빌과 그의 친구들의 노력은 도청과 감시, 협박과 폭력 속에 무기력한 모습만 보일 뿐이고, 절반 이상의 주민은 더 스토어가 나눠준 독이 묻은 사과에 열광하며 그들에게 주니퍼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권력까지 기쁘게 넘겨줍니다. 슈퍼맨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더 스토어의 진격을 막을 방법은 없어 보이고, 결국 주니퍼의 멸망 외에는 딱히 예상되는 엔딩이 없다고 판단될 즈음, 작가는 전혀 예상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급선회시킵니다.

 

비교적 단선적인 서사에도 불구하고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긴장감 넘치게 채워 넣은 작가의 필력은 대단합니다. (물론 동어반복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종종 있어서 100페이지 정도만 줄였다면 그야말로 빈틈없는 작품이 됐을 거라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자가발전하는 대형마트를 그린 대목이나 소도시 주민 개개인이 느끼는 공포심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묘사한 대목을 읽다 보면 스티븐 킹과 함께 대표적인 호러 작가로 알려져 있다는 작가 소개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됩니다.

 

물론 이런저런 아쉬움이나 잘 이해가 안 되는 지점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조금은 급하게 마무리된, 또 그 해결방법 역시 다소 모호했던 엔딩 부분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더 스토어에게 직격탄을 맞는 자영업자들을 선의의 피해자로만 설정한 점이나 주니퍼의 소비자들을 획일적이고 우매한 추종자들로 암시한 점, 또 이미 다른 지역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켜 전국적인 주목의 대상이 된 더 스토어가 별 어려움 없이 경찰과 언론, 학교와 의회까지 장악하고 통행금지까지 단행하는 장면은 아무리 이 작품의 배경이 1990년대라고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었습니다.

 

몇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더 스토어는 갑자기 치솟은 5월의 더위를 충분히 식혀줄 만큼 서늘한 공포와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했고, 탐욕, 도덕, 권력, 이기심, 자본주의 등 다채로운 코드들이 전혀 색다른 방식으로 믹스될 수 있음을 일깨워준 특이한 작품이었습니다. 브람스토커 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더 스토어가 한국에 소개된 첫 작품이라는 점은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앞으로 가끔씩이라도 벤틀리 리틀의 작품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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