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니의 희귀본과 중고책 서점 - 어느 사이코패스의 사랑
캐럴라인 케프니스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무니의 희귀본과 중고책 서점에서 일하는 조 골드버그는 어느 날 서점에 찾아온 기네비어 벡을 자신의 운명으로 점찍습니다. 그날 이후 조의 일상은 벡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녀의 스마트폰을 손에 넣은 뒤론 사생활까지 낱낱이 엿봅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벡은 조에게 쉽게 곁을 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벡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연인과 단짝 친구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조의 집착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벡을 소유하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할 각오를 다집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벡을 갖게됐지만, 조 앞에 결코 희열과 기쁨만 찾아오진 않습니다. 또다시 나타난 방해자, 어딘가 의심스러운 벡의 행동, 꽁꽁 감춰놓았던 비밀의 탄로 등 조는 끝이 보이지 않는 벡과의 술래잡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합니다.

 

일기 또는 독백 형식으로 서술된 한 남자의 평범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조의 일기는 온통 벡에 대한 집착과 욕망, 섹스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동시에 (이 작품을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장르물로 분류시켜주는) 몇몇 살인에 대한 담담하면서도 세밀한 고백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어느 사이코패스의 사랑이라는 언밸런스한 부제는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녀의 메일을 해킹하고, 뒤를 미행하며, 소지품을 하나씩 소장해가는 조는 명백히 제정신이 아닌 광적인 스토커이고, 그가 저지른 살인 역시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 하에 실행된 것들이지만, 작가는 일기 형식의 문장과 집요하리만치 디테일한 심리 묘사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어느 순간 이 광적인 스토커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만듭니다. 스토킹이나 살인 모두 명백한 범죄이고, 조는 사이코패스로 분류되는 것이 마땅한 인물이지만 그의 일련의 행위를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처럼 잘 포장했기 때문입니다.

 

벡 역시 어느 한 곳, 누구 한 사람에게 얽매이지 않을 비범한 여자입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사람을 끌어들여 파멸시키거나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치명적인 항성 같은 존재입니다. 조가 벡을 묘사할 때 종종 영화 클로저의 나탈리 포트만을 언급하곤 하는데, 그 영화를 본 독자라면 벡의 치명적인 매력이 어떤 모양새인지 쉽게 연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읽다 보면 결국 조와 벡 모두 비슷한 DNA를 지닌 사람들이란 걸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는 조와 벡의 해피엔딩을, 누군가는 비극적 엔딩을 기대하게 될 텐데, 두 사람의 관계가 조울증처럼 극단을 치달으며 전개되는 덕분에 거의 마지막까지 그들의 엔딩을 쉽게 예상할 수는 없습니다.

 

2년 전쯤 읽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미친 사랑이라는 작품이 종종 생각났습니다. 1920년대에 출간됐고, 일본 특유의 사육이라는 테마를 기반으로 15살 소녀 나오미를 향한 28살 남자 가와이 조지의 평생에 걸친 사랑을 다룬 작품인데, 가와이 조지가 집착보다는 헌신에 가까운 무한애정을 바쳤다면 무니의~’의 주인공 조는 좀더 공격적이고 기복이 심하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결국엔 사랑에 관한 한 비슷한 경로를 걸은 인물들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가와이 조지가 탐미주의에 빠진 마조히스트라면, 조는 공격적인 욕망으로 들끓는 사이코패스 새디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사이코패스의 사랑이라는 부제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한 독자라면 당혹스러움을 느끼거나 매끄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경험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심리묘사가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서 딱히 페이지터너라고 부를 수도 없고, 살인과 스토킹을 긴장감 있게 묘사했다고 할 수도 없어서 애초 장르물의 매력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뛰어난 캐릭터 플레이와 집착-냉소-욕망에 관한 디테일한 심리묘사 등 이 작품만의 미덕은 분명히 인정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사족으로... 이야기 속에 다양한 음악, 영화, 책이 자주 인용되거나 언급되는데 저의 경우 다행히 대부분 아는 작품들이라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음악의 경우 엘튼 존과 데이빗 보위, 영화의 경우 한나와 그의 자매들’, ‘클로저’, 책의 경우 스티븐 킹의 샤이닝’, ‘닥터슬립과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영화와 책의 경우 검색을 통해서라도 약간의 사전 지식을 예습한다면 이 작품을 좀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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