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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ㅣ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5월
평점 :
2인조로 추정되는 사기꾼에게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신고가 잇달아 87분서에 접수됩니다. 동시에 넉 달 이상 물속에 방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표류사체가 교각에서 발견됩니다. 흑인형사 아서 브라운이 사기꾼 사건을 맡아 탐문과 자료조사에 나서고, 스티브 카렐라는 표류사체의 신원파악과 살인사건 여부를 조사합니다. 아서 브라운의 사기꾼 수사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식으로 더디게 진행되는 반면, 또다시 발견된 표류사체에서 앞선 사체와의 공통점이 드러나자 카렐라의 행보는 빨라집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카렐라의 아내 테디가 본의 아니게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카렐라는 얼마 전 죽음 직전까지 갔던 악몽 같던 사건을 떠올리며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경찰 소설의 고전인 ‘87분서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으로 1957년에 출간됐습니다. 그동안 ‘아이스’(1983년)와 ‘킹의 몸값’(1959년)을 읽었는데, 두 작품이 비교적 사건 자체에 충실했던 반면, ‘사기꾼’은 사건 뿐 아니라 87분서 형사들의 캐릭터나 개인사에 관한 이야기, 또 주인공 스티브 카렐라와 그의 아내 테디에 관한 이야기가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여대생 애인과 휴가 갈 생각에 부풀은 신참이자 막내인 버트 클링, 불같이 성급하지만 일면 집요함까지 겸비한 흑인형사 아서 브라운, 초자연적인 참을성으로 무장한 특이한 이름의 대머리 형사 마이어 마이어, 폭력적인데다 얄밉기까지 한 로저 하빌랜드 등 87분서 형사들의 캐릭터 하나하나가 사건 못잖게 풍성하게 묘사됩니다. 사실 이런 묘사는 앞서 읽은 작품들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지만 ‘사기꾼’의 경우 공과 사가 뒤섞인 상황들 때문인지 더 맛깔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카렐라의 경우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마약 밀매인’에서 죽을 예정(?)이었다가 편집자와 독자들의 성화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시리즈를 이어가게 된 덕분인지 두 번째 삶을 살아가는 그의 개인사가 사건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더불어,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시리즈 두 번째 권에서는 보이지 않았고, 세 번째 권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카렐라의 아내 테디가 거의 주인공 급에 가까운 중요한 역할을 맡은 점도 색다른 재미를 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사건 자체는 잔혹하거나 복잡하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그 해결 과정도 엔딩 부분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한 상황 외에는 딱히 독자의 뒤통수를 칠 만큼 현란하지 않습니다. 복잡한 구성과 연이은 반전으로 승부를 거는 현대의 미스터리나 스릴러에 비하면 소박한 설정이라고밖에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시절의 경찰서가 풍기는 고전미와 매력적인 형사 캐릭터를 실컷 맛볼 수 있는 작품인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능청과 비꼼, 풍자와 해학의 진수를 보여주며 유려하게 흘러가는 에드 맥베인의 문장은 읽으면 읽을수록 유쾌함을 더해줍니다.
스티브 카렐라가 죽다 살아난 사연이 너무 궁금해서 조만간 ‘마약밀매인’을 찾아 읽을 예정입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묘한 중독성을 띤 ‘87분서 시리즈’가 계속 출간되기를 기대해봅니다.